나의 영도 정착기
영도 할매귀신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부산사람들은 내가 타지에서 왔다고 하면 하나같이 영도할매귀신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처음 몇 번은 웃을 수 있었다. 영도의 역사를 알고 나면 가난을 지긋지긋해하는 부산 어르신들의 이송도(영도)에 대한 멸시도 (동의하진 않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도할매귀신 이야기를 조언이랍시고 하는 부산사람을 거듭 만나고 보니 이들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어졌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망할 거란 얘기를! 대체 왜?
어느 날 부산 출신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친구: 넌 왜 하필이면 영도로 갔냐?
-나: 영도 바다가 예뻐서
-친구: 영도할매귀신 이야기 알고 있어?
오호라. 어김없이 영도 할매 귀신 등장. 나는 이때다 싶어 물어보았다.
-나: 안 그래도 그 이야기 진짜 귀에 딱지 앉도록 들어서 궁금했는데…. 영도에 이사 온 사람한테 그런 얘긴 왜 하는 거야?
-친구: 그냥 부산에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니까?
-나: 보통은 외지인이 이사 오면 무사히 정착해서 잘 지내길 빌어주잖아. 근데 그 이야기는 너 이제 망할 거니 큰일 났다는 말로 들릴 때가 있단 말이지. 의도가 뭐야?
-친구: 의도는 무슨~ 그냥 알고 있으라고 하는 얘기지
-나: 그러니까 그걸 왜 알고 있어야 해? 알아서 달라질 게 없잖아. 정말로 내가 새벽에 몰래 야반도주하듯 이사하길 바라는 거야?
-친구: 그냥 재밌으니까
-나: 어느 대목이 재밌는 거야? 혹시 상대가 기분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봤어?
-친구: 기분이 왜 나쁜 건데?
이 친구가 또 누군가의 맘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단도리를 쳐보려 애썼지만 그는 끝까지 날 위해서 해주는 말에 쓸데없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부산에선 ‘원래’ 다 그런다고 하면서…
부산에서 ‘원래‘ 그런 것은 왜 그렇게 많은 걸까. 지내다 보니 더 놀라웠던 사실은 소수의 사람들이 재미로 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던 이 전설을 부산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영도할매 귀신 이야기를 꺼내는 무수한 부산 사람들을 만났고 여전히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에 그냥 하는 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묻지 않았는데 꺼낸 말에는 어떠한 의도나 원하는 반응이 있을 거 같은데 할매귀신 이야기는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 대체 뭐 어쩌라고?
알려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표해야 하나? 재밌는 농담이라며 웃어야 하나? 그게 정말이냐고 불안에 떨거나 아님 나는 이제 망했다며 울어야 하나?
혹시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하는 말인지 아는 부산 사람 있으면 좀 알려줘요.
덧,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국에서 무속인의 비율이 제일 높은 곳이 영도라고 한다. 영도가 신비롭고 영험한 곳이기 때문이라는데 타 지역에도 점집들이 위치한 많은 곳이 재개발지역이나 낙후된 지역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영도의 점집 비율은 뿌리 깊은 가난과의 연결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영도 다리 아래 점바치 골목이 사라지며 그곳에 머물던 무당들이 영도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 자리 잡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