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에 대하여

다시 돌아가도 더 잘할 순 없을 거 같아.

by 해적왕꿈나무


열심히 했다. 몸살을 앓으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결과를 기다렸다. 웬걸, 결과가 엉망이었다. 결과가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니지, 내가 지금 오만하게 생각하고 있나? 설마 나 열심히 하지 않은 건가? 남들은 얼마나 한 거지? 내가 그거보다 적게 했나 봐. 어떡해, 나 너무 별로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면서 결과가 좋지 않다고 징징거리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좋았다. 목표가 있으면 뭐든 해내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지독하다는 말을 들으면 짜릿했다. 동시에 무능하고 게으른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난 이렇게 못난 사람이 아닌데, 언제부터 이렇게 초라해진 거야. 꾸미는 건 애초에 포기했다. 그러다 밥을 포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도 포기했다. 내가 뭘 더 포기해야 했을까. 집중력이 약했나? 암기력이 형편없었나? 나도 모르게 중요한 걸 제쳐두고 주변부를 팠던 걸까? 나는 우울에 잠식되어 오래 허우적거려야 했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었다. 어느 정도 해야 열심히 한 건데, 어느 선을 넘어야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미래의 일은 아무것도 모른 채 용돈을 아껴서 병원에 다녀야 했던 과거의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너져 내렸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던 몸뚱이, 산산이 찢어진 마음 중 어떤 게 더 아플까. 자취방은 무드등의 은은한 불빛, 미니 가습기의 연기 뿜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나만의 우주였다. 마음껏 방황해도 되는 나의 소우주.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너무 아팠고 너무 지쳐 있었다. 그 와중에 잠이 자꾸 깨어서 가만히 누워서 영상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낼 힘이 없었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했고, 밥을 먹으려면 일어나서 손을 씻고 밥을 차려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하품을 하면서 참았던 눈물이 꾹꾹 흘렀다. 어른은 이런 건가.


최선이란 뭘까. 오래 생각해 보았다. 영상을 틀어놓아도 가습기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시끄러운 적막 속에서 오랫동안 생각을 했다. 남들이 말하는 그런 거 말고, 내가 생각하는 내 최선은 어느 선인지 정해야 이 적막을 깨뜨리고 다시 땅을 딛고 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장 최에 선할 선, 가장 좋고 훌륭한 일. 나에게 가장 좋고 훌륭한 일이 뭘까. 결과와 상충할지라도, 과정 속에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노력을 했는가. 후회, 미련, 아쉬움이 한 톨도 없는 선택이란 건 있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도 순간순간에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태블릿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점차 선명해졌다. 꽤 볼륨이 컸네. 배가 고팠다. 속이 쓰려서 차를 한 잔 해야 뭐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뜨거운 녹차를 마시면서 지나간 시간을 계산하다가, 뇌가 허기에 젖어서 허겁지겁 냉장고를 뒤져서 당장 입에 넣을 수 있는 걸 와구와구 넣다가, 환기가 하고 싶어져서 환기를 했다. 몸이 둔한 동물이 된 거 같아서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하고 샤워도 했다. 청소를 마친 깨끗한 나의 우주의 품에서 오랜만에 일기장을 폈다.


고생했다, 나 자신. 그만큼 했으면 됐다. 사실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못해. 그만큼 해낼 수 없을 거 같다. 처음이니까 뭣도 모르고 달려들었지, 알고는 그 고생 못하겠다. 애썼다. 이제 푹 자. 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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