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lose my eyes to see you

침묵의 미학

by 해적왕꿈나무



네 것과 비슷한 이름을 보고 네가 상기됐으나 네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만난 지 10년 되던 해에 너와 허무하게 끝났다. 평생을 말하던 너를 가끔 떠올렸던 4년. 아직 그 시간의 반절도 흐르지 않았는데. 나는 나에게 불리한 기억의 대부분을 빠르게 도려내는 이기적이고 편리한 두뇌를 가졌다. 넌 대체 그때의 나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내가 그 시간을 송두리째 잊어가게 해. 우리 분명 좋았는데. 이름조차 분명하게 떠올리기 힘들어서 힘들다. 함께 웃던 시간이 있었던 건 기억나는데, 우리 무슨 대화를 나누며 웃었더라. 아직 담배를 배우지 않고 피어싱을 뚫지도 않은 촌스러운 얼굴이 그립다. 특이한 웃음소리와 개구진 표정이 생생하다. 나도 바쁘다. 너를 구태여 떠올리진 않는다. 가끔 기억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있으면 눈을 감아야만 한다. 눈앞의 현실에는 네가 없다.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 애는 점점 더 몸집을 줄여서 눈을 꼭 감고 한참을 유영해야 한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뽑으라면 고민 없이 뽑을 그 시기에 네가 떠났다. 내 우울이 너를 지겹게 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너에게만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에게 실망했다. 다시 돌아가도 그게 내 최선일 테지만, 참 어리석었지. 너와 나의 자취방이 우리의 고향집보다 가깝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된다는 게 이런 건가,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더라. 우리 대학은 우리 중고등학교보다 가까운데도. 우연히 서로를 스치는 일도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서로를 비껴가는 중인가.


그 뒤로 자주 입을 다물었다. 용기 내서 한 이야기에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 너도, 나도 잘못했지만 뭐가 됐든 내 입방정 때문에 너를 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 안의 전투는 오롯이 내 몫이고 가족들이 아니고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옳다. 설령 옳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게 후회가 적은 쪽이다. 어른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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