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어떤 면은 외면

망각의 미학

by 해적왕꿈나무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피부병이 있는 나에게 첫인상이 장애인 같았다고 한 친구,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단어를 고르고 골라 누군가에게 퍼부었던 순간, 시험에서 미끄러진 나에게 쪽팔린다고 말하던 어머니, 할머니를 무섭게 몰아붙이던 아버지,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랑을 말하다 잘 지내라는 인사도 없이 나를 놓았던 연인.


파편만 더듬거려도 실실 웃게 되는 기억도 많이 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이따금씩 너무도 아픈 기억들이 비수가 되어 날아온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나를 향해 모진 말을 쏘아댄다. 누가 뭐라 하든 할 일을 놓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누군가는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고 싶어서 간절했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절박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상처 입힐 수도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그들을 할퀼 생각을 못한다고 해서 그들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내심 기대했던 거겠지. 참 어리석고 순수했다. 다시 돌아가도 그런 착각에 빠져도 좋을 만큼, 순애였다.


사랑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도 상처 입히지 않는 것. 그럼 서로를 수도 없이 물어뜯은 어머니와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아니. 전혀 아니다.


삶은 쉽지 않다. 삶은 정말로 쉽지 않아. 매일매일이 투쟁이고, 견딤이다. 당신은 몸과 마음이 바스라지는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내게 너마저 이러면 안 된다고 발악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 나와 나눈 수천, 수만 개의 단어 중 고작 몇 개가 날카로웠다고 해서 우리의 좋았던 추억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본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잠깐 이성을 잃고 뱉은 말이었나 보지. 나만 잊으면 깔끔했을 텐데, 내가 그 기억에 집착하고 기어이 우리 사이에 그걸 다시 내놓아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나 혼자만 기억하고 기억할 때마다 상처받는 게 억울해서 같이 고통받고 싶었던 거 같다. 창피하게 만들고 싶었던 거 같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당신이 나에게 상처를 줬던 게 억울하고 못 견디게 얄미웠거든. 나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사랑했으나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를 학습하지 못한 어린애였다. 조금은 외면하고 어물쩍 넘어가주는 것도 사랑이었다.



1.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는 못난 얼굴은 외면해주기.

2. 오늘 힘든 일이 있었나 보다, 내가 속상하게 만들었나 보다. 그렇게 넘어가주기.

3. 나도 그럴 날이 있을 거라는 걸 받아들이기.



사랑만큼은 쉬울 줄 알았는데. 좋은 것만 막 퍼주는 것도 아니고, 함께한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걸 참아주는 것도 아니다. 쉬운 건 없다지만, 알면 알수록 사랑이 가장 어려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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