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간다

나의 수호천사에게

by 해적왕꿈나무



“오빠야는 파란색이니까 파란색 좋아하나!”


우리 오빠는 등에 몽고반점이 톡톡 찍혀 있었다. 나는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분홍색에 환장하는 꼬마숙녀였다. 머리끈도 붉고, 얼굴 반쪽도 붉고, 옷도 붉고, 신발도 붉었다.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홍색으로 도배한 채 폴짝폴짝 뛰듯이 걸어도 오빠는 늘 내 옆에 있었다. 내가 놀림을 당해도, 왕따를 당해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궁하는 물음에 조개처럼 입을 다물 때도 고사리손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지도 고작 내보다 한 살 더 많았으면서. 화를 냈으면 냈지, 내 주위를 맴돌지 않은 날이 없었다. 딱 하루, 내가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오빠가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겠다며 나를 두고 학교에 가버렸던 그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잠시만 기다려. 끊지 말고.”


그렇게 오고 싶었던 꿈의 대학에 진학하면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내 세상은 한 이백 배쯤 커져서 나를 허우적거리게 했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내몰 때면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기들은 나이차가 큰 오빠가 있는 걸 부러워했다. 우리 오빠 너네보다 어린 99년생이라고 하면 다들 놀랐다. 그날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학교 사람들이 연년생끼리 잘 지낸다고 신기하다 그랬다 말해주니 피식 웃었다. 앗싸! 내가 오빠를 웃겼다. 부모님은 촌에서 도시로 혼자 유학 보낸 딸이 안타까워서 내 진지한 고민을 객관적으로 들을 줄 모르셨다.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부터 나서 괜히 부모님도 울렸다. 나는 가족들 웃기는 게 좋은데. 언젠가부터 따끔한 꾸중이나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할 때면 오빠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오빠는 단 한 번도 나중에 전화하자고 하지 않았다. 울지 말라고 하지 않았고 힘내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울음을, 내 하소연을 무심하게 듣다가 나 이제 다 울었노라, 나 이제 좀 후련하노라 말하면 오케이 잘 자라 말하고는 시크하게 전화를 끊었다.



“윤이가 너를 참 애틋해 해.”


방학 때마다 우리 가족은 내가 부디 평범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부산에 갔다. 누구도 구태여 말하진 않지만, 사실 그때 오빠도 작고 어렸다. 작은 얼굴 반쪽이 까맣게 지져져서는 독한 마취약에 취해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침을 질질 흘리며 오빠가 네 개로 보인다 말하는 동생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을 거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 꼴을 대체 몇 번이나 보여준 건지 셀 수조차 없다. 나는 내 꼴을 보지도 않았고 제정신도 아니었지만, 오빠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내 구역질과 헛소리를 지켜봐야 했다. 세 개, 두 개, 하나. 하나로 보여, 라고 말하면 뽈뽈뽈 뛰어와서 이제 집에 가자고 하던 내 수호천사. 부모님은 흉한 점을 여자애 얼굴에 줘서 미안하다고 우셨다. 본의 아니게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음을 안다. 고작 곽티슈 한 장을 막 쓰는 건 아까워해도 터무니없이 비싼 수술비는 뿌듯하게 내놓는 모순을 이해한다. 무섭고 힘들었을 텐데, 혼자 밝게 웃으며 나 몇 개로 보이냐고 들썩이는 커다란 어깨들을 다 가리고 내 시야를 꽉 채우면서 묻던 맑은 아이를 기억한다.



“그, 너 대학 입시 준비했을 때는 어떻게 했었어?”


답지않게 축 처진 목소리가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이 뜨거웠다. 취직을 하려면 자소서를 써야 한다는데, 대학 입시 때와는 무게감이 달라서 조언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요즘 내 주변은 다 취업 이야기로 뜨거웠는데, 우리 오빠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다행히 한동안은 나 힘들다고 주저리주저리 하지 않았다. 무심하고 이기적인 내가 부끄러워서 허둥지둥 의대 입시 자료를 뒤져 오빠를 흉내 내면서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법한 것들을 횡설수설 설명했다. 오빠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다. 본가에 가니 맑았던 피부가 많이 상해 있었다. 우리 집안은 힘들면 피부가 그렇게 씅을 낸다. 부모님도 피부가 회색빛이었다. 나만 생기발랄해서 무안했다. 미안해.



“윤이가 요즘 너 어려워하는 거 알아.”


오빠는 공부라면 질색팔색하는 사람이었다. 나라도 저 외모에 저 머리면 공부 드럽게 안 했을 거 같다. 공부까지 못하면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신분이 달랐달까. 고지식한 부모님 밑에서 공부를 강요당하느라 저 사람도 어지간히 힘들었을 거다. 나이를 좀 먹더니 이제는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나 보다. 취직을 진지하게 준비하려고 하는 게 대견했지만, 한편으로는 연필이라곤 쥐어본 적 없는 사람이 깨나 애먹겠다 싶다. 아는 길이라 더 보내기 싫지만, 가기 싫고 보내기 싫어도, 그래도 어떡하겠나, 해내야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힘든 거 아냐. 일단 시작부터 하고 나중에 완벽해질 생각을 해봐. 오늘 해야 할 일, 당장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하나씩 열심히 하다 보면 시간이 쌓여서 뭔가 돼 있더라.


나도, 나 같은 게 해낼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었어. 오빠가 그랬지, 이 독한 것아 그 어린 나이에 병원 다니면서 어떻게 이 짓을 해낸 거냐고. 나는 그때 뭣도 없는 나 하나만 믿으면 안 될 거 같아서 내 가족을 믿었어.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소화 잘되는 도시락을 싸주던 엄마, 제철과일도 비싸다고 안 먹으면서 한겨울에 빨개진 손에 딸기 소쿠리를 달랑달랑 들고 오던 아빠, 선임 깰까 봐 엄동설한에 밖에 나가서 전화 받던 오빠를 믿었어. 세 사람이 믿는 나를 믿었어. 나 하나 부서져도 세 사람이 웃는 게 난 좋았어. 합격 전화 받고 아무도 케익 안 좋아하는데 굳이 케익 사서 초 불었던 날, 결국 그 케익 몇 입 먹지도 않았잖아. 난 아직도 그날에 살아. 엄마, 아빠는 내가 불운하게 태어났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나 하나 불사를 만큼의 가치가 있는 가족을 만났어. 오빠한테는 우리가 있잖아. 힘든 날에는 가족을 봐. 나를 봐. 오빠가 그랬듯이 내가 항상 여기 있을게. 언제든 전화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뿌듯하게 잠들 수 있는 하루이길 바라.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대한민국 취준생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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