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한심한 이야기
조금은 한심한 이야기, 아니 많이 한심한 이야기이다
"재원 학생 이번에 공부 좀 열심히 하셔서 졸업하셔야죠!"
학과에서 전화가 왔다. 행정실 직원인지 조교분인지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였다.
졸업 관련해서 전화를 많이 했던지라 친밀감이 생긴 듯했다.
"그게 쉽지 않네요. 저 같은 사람이 있나요?"
머쓱해서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시험도 합격하셨으면서 왜 토익을 못 넘겨요?"
악의 없는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14학번, 10년이 넘도록 졸업을 못한, 세무사 시험은 합격.
내가 생각해도 호기심이 생길 법했다.
내가 수능 영어 만점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도시락 싸들고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
"다음 학기 때는 꼭 졸업해서 그만 친해졌으면 좋겠네요"
나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긴 한숨을 쉬었다.
2차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시절.
추석을 앞두고 친척들과 벌초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갔었다.
암 수술 이후 기력이 약해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예초기를 들었다.
하루종일 더위와 예초기의 진동에 시달렸던지라 밤이 되자마자 나는 곯아떨어졌다.
자다가 잠깐 잠에서 깨었는데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거실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이 부러워요. 저도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요. 연금을 받고 좀 쉬고 싶어요. 사는 게 좀 버겁네요. 근데 저 녀석이 마음에 걸리네요."
조용하게 말했지만 내 귀에 선명하게 박혔다.
살면서 한 번도 아버지가 힘든 내색하는 것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항상 묵묵하게 출근하시고 웃으면서 퇴근하셨기에 괜찮으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도 삶의 무게에 버거움을 느끼는 인간이었다.
12살 차이가 나는 큰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식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은 그 심정을 알았기에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깨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해 나는 시험에 떨어지고 이듬해에 합격을 했다.
학기가 남았던 지라 아버지는 남은 학기 여행 다니면서 마지막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바로 교수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취업계를 부탁드렸다.
정규학기 이러닝과 계절학기 이러닝. 될 수 있는 대로 학점을 이수했다.
학기를 날림으로 이수하면서 세무사 생활을 병행했다
사실 토익을 제대로 준비한 적이 없었다.
문제집을 사본 적도 없고, 출퇴근길에 영단어 외우고 시험을 본 게 다였다.
토익을 못 넘기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토익보다는 빨리 성과를 내서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아버지는 좀 쉬셔도 된다고. 이제 그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의 시간과 아버지의 시간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래서 항상 쫓기듯이 살았다.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계속 넘어졌다.
수면부족으로 인한 멍한 상태, 성장에 대한 강박, 그로 인한 조급함.
나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서울에 올라온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아빠는 네가 회사 그만두고 좀 쉬었으면 좋겠다.
일도 중요하지만 정작 너를 위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못했던 너 자신을 위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
토익도 좀 따고 졸업장도 좀 가져와라 아빠는 그게 소원이다."
자식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은 그 심정을 알았기에
나는 그저 알겠다고 대답했다.
올해는 반드시 졸업하겠다고 아버지와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과 약속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