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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적

맞서 싸워야 하는 것.

by 기적은없다



2011년 고등학교 입학을 했을 때였다. 3월부터 야자(야간자율학습)와 보충수업을 학생의 선택에 맡긴다는 '경기인권조례'가 공포되었다. '자율'이라고 해놓고 그동안 강제로 진행이 되어왔는데 드디어 이름값을 하게 되나 싶었다.


응 아니야~


여전히 야자는 강제였다. 저녁 7시가 되었지만 하교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불만의 표정을 짓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입학 첫날부터 야자의 쓴 맛을 맛본 셈이다.

나는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야자는 자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담임선생님과 반 학생들을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줘서 좋아하는 눈빛과 좀 나댄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빛.

과거 레슬링선수 출신이었던 담임선생님의 눈빛은 빛이 났다. 마치 본보기를 찾고 있었던 것처럼.

선생님은 손의 악력으로 내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꾀부리지 말고 공부나 해라"

선생님은 알지 못했다.

중학생 때 운동부 생활을 해서 웬만한 물리 공격에는 내성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한테 심한 반골기질이 있다는 것을.

그 이후 교육청에 민원도 넣고, 교무실에 불려 가기를 여러 번.

선생님들은 나를 '공부하기 싫어서 꾀부리는 문제아'라고 생각했다.

영웅으로 추대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요란하고 나대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알빠노'였다. 그저 야자가 하기 싫었고 , 부당하게 찍어 누르려는 게 싫었다.

그리고 처음 치러진 3월 모의고사에서 반 1등을 찍고 나는 야자를 뺄 수 있었다.



내 반골기질은 군입대를 해서도 여전했다.

선임들은 계속 전역을 하는데 후임이 안 들어왔다. 티오는 계속 다른 부대에 뺏겼고 병들은 갈려나갔다. 부사관과 장교들은 묵인하였다.

나는 상사, 원사, 지통실장인 소령과 맞다이를 떴고

"너 이거 항명이야. 전시였으면 총살이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응 휴가 밀린 병장한테는 그런 거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사실 그때 수능 응시를 위해 꼭 나갔어야 했다. 결국 상급부대 인사담당과 사령관한테 투서를 써서 티오를 받아냈다.



전역하고는 학교 고시반에 들어갔다.

그 당시 25살로 나는 막내였다. 어쩌다 보니 지도부 실장을 맡게 되었는데 궂은 일을 도맡아 해 줄 막내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나는 실장이 되자마자 고시반의 부조리를 갈아엎었다.

30살 이상 청소 열외 폐지, 신입실원 장기자랑 폐지 등

30살 이상 형들의 반발이 거셌고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모든 실원들을 모아놓고 공개 투표로 밀어붙였고 반대 한표 없이 다 폐지시켰다(파시즘인가..)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 나는 자유를 위해서 적들과 맞섰다.

자유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내 행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면 들이받았던 것 같다.

'학교, 군대, 고시반'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선생님, 상관, 선배'라는 적들과 싸웠다.

특정한 집단 내의 명확한 적들.

대상이 명확하기 때문에 맞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고 나서는 특정한 집단도 없었고 명확한 적도 없었다.

집단은 세상으로 확장되었고, 명확했던 적은 불특정 다수가 되어버렸다.

어디서 누구와 맞서야 하는지 나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사회는 정해진 선로 위에 나를 두려고 했다.

이탈하려고 하면 수많은 눈총과 비난에 시달렸다.

다수는 사상검증을 하듯 나의 목소리를 앗아가려고 했다.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잘못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세상과 다수의 적은 나의 자유를 빼앗아 가려고 했다.

나는 사회가 정한 선로에서 벗어났는지

내가 내는 목소리가 정녕 이상한 소리인지

나 자신을 의심하고 서서히 잠식되어 갔다.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마지막 한 가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맞서 싸울 것을 다짐한다.

세상과 불특정 다수가 아닌,

의심하는 나 자신을.

잠식되어 가는 나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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