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자연을 정복하다

한나 아렌트와 원자폭탄

by 환경인문학수첩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는 없어졌다.


6년간 이어져 온 세계 2차 대전은 이날, 그리고 3일 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마침내 종결되었다. 이에 세상은 그토록 고대했던 전쟁의 끝이 왔다는 것보다도 원자폭탄이 보여준 미국의 무력에 경악하게 된다. 한 나라의 도시 하나를 한 숨에 날려버릴 만한 무기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이 '원자력'이라는 원자를 분열시킨 힘으로부터 온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개념이었다. 원자폭탄은 전쟁의 종결임과 동시에, 인간이 이제는 단순히 자연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세상에서 정의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까지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자연스럽게, 원자폭탄과 그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논의 역시 시작되었다.


한나 아렌트와 원자폭탄

Ethics-Centre_Big-Thinkers-Hannah-Arendt-png.jpg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를 자연 철학자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혹은 <전체주의의 기원>과 같은 유명한 저서를 통해 접했을 테다. 그러나, 아렌트의 철학에 중요하게 영향을 끼친 자연적이자 인공적인 현상이 있다. 바로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다.


아렌트에게 원자폭탄이 가진 의미는 그의 덜 알려진 저작인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에 드러나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출판년도 사이에 출판된 이 책에서 아렌트는 고대의 역사 개념과 근대 역사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한다. 아렌트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역사가 순환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고대의 역사관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인간이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 이미 일어난 것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예를 들어, 사계절이 반복되고 행성의 주기가 반복되듯, 모든 일들은 자연이 정한 한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즉, 인간은 자연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렌트가 본 고대 역사관의 특징이었다.


반면, 아렌트에게 근대 역사는 고대 역사와는 달리, 인간이 자연이 전제한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점진적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원자폭탄이 아렌트에게 미친 영향이 드러난다. 원자폭탄이 세상에 공개되자 아렌트를 포함한 사람들은 인간이 정의 상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 단위까지 분열시키며 통제하게 되었음에 경악하였다. 이런 히로시마 폭탄 투하의 여운 속에서, 아렌트는 현대 인간이 자연 속으로 '행동'(action)하였다고 말한다. 아렌트는 원자폭탄을 포함한 2차대전의 참상은 인간의 행동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창조물이다고 단언한다. 자연의 한계에 속박되었던 고대와 달리, 근대의 인간은 스스로 자연을 정복하고 변형하여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즉, 아렌트의 철학에서 근대 인류는 '인류가 전에 본 적이 없는' 과정들과 위험들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의 행동을 본질적으로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ARENDT-final-42-49717588.jpg 한나 아렌트

물론, 이러한 행동의 불확실성은 근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였다. 전례 없는 미래를 창조하며 행동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는 아렌트의 정치철학에서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이런 '행동'이 동물들과 인간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조건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예측 불가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실행되는 행동을 통해, 인간들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역사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비난한다. 아렌트에게 인간의 행동은 곧 역사를 창조하는 행위와 같았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개인의 뜻을 국가의 뜻에 복속시킴으로써 이와 정반대의 철학을 내세웠다. 특히, 나치 독일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는 홀로코스트 수용소와 같은 강제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행동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전체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불확실성과 비판적 사고는 국가, 혹은 집권당의 이데올로기로 대체되며 개인을 소외시킨다는 것이 아렌트의 지론이다.


악의 평범성

ra1021.jpg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렌트가 말하는 '소외'는 1963년에 출간한 그의 대표작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표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저서에서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체주의 사회가 어떻게 개인을 소외시켜 사회의 부품으로 만드는지 설명한다. 아이히만은 전 나치 장교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die Endlösung der Judenfrage)이라고 불리는 유대인 대량 학살의 주 책임자였다.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패망하였음에도, 아이히만은 신분을 속이고 아르헨티나로 건너와 10년 이상을 숨어살고 있었다. 이런 그의 행적이 발각된 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의 대법원으로 납치되어 소위 말하는 '아이히만 재판'에 출석하게 된다.


당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더 뉴요커>라는 잡지에 의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그의 참혹함이나 반유대주의가 아닌, 그의 평범성이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단지 '무심하게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며 스스로를 변호한다. '최종 해결책'에 가담한 것 역시, 자신의 반유대주의 때문이 아닌, 그의 윗선에서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에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한 행동이었다고 항변한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 및 서구권의 지식인들은 아이히만의 이런 자기 변호에 분노하였다. 그러나, 아렌트는 홀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아렌트는 바로 아이히만의 '평범성'에 주목하며, 전체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악'이라는 존재가 절대악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에게 나타나게 되는지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전체주의 사회가 개인을 자유로운 '행동'으로부터 소외시킨다는 점이었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오로지 국가의 부품이었기 때문에, 앞서 아렌트가 언급한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 과정'으로부터 완벽히 분리된다. 그렇기에, 아이히만은 '유대인에 대한 어떤 나쁜 감정도 품지 않고'도 최종 해결책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물론, 아이히만은 실제로는 반유대주의자였고 이에 대해 아렌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현재까지도 적지 않다.) 따라서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인간이 그 결과를 반드시 의식하지 않고도 행위를 전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주장한다.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7ff2b528fe79917fa871de4c04085411.jpg 나치 독일의 '최종 해결책'은 유대인을 대량학살하는 프로젝트였다.

아렌트가 말하는 '소외'는 나치 독일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렌트는 그것이 '유대인 문제'(The Jewish Question)이라고 불리던 당대 유럽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 문제를 반영한다고 믿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아렌트는 근대 반유대주의와 고대의 반유대주의의 차이점을 정의한다. 고대의 반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유대교를 믿었기 때문에 차별을 한 반면, 근대의 반유대주의는 생물학적인 근거를 들어 스스로를 정당화한다고 아렌트는 설명한다. 즉, 고대의 유대인에게는 스스로의 종교를 바꾸어 차별을 받지 않을 그나마의 자유라도 있었던 것과 다르게, 근대의 유대인들은 유사과학과도 같은 생물학적인 이유(신체적 특징, 혈통, 유전적 열등성 등)로 반유대주의를 피할 자유가 사실상 없었다. 근대 반유대주의자에게, 그 사람이 신앙심 있는 유대인이었는지 아니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치 독일 아래에서 이루어진 홀로코스트는 이런 임의적인 정의의 '유대인'에 의존하였다. 처음에는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만 잡혀갔으나, 이후에는 가족이 유대교를 믿는 사람, 혈통이 유대인인 사람까지 포함되며, 최종적으로는 특정 신체적 특징을 가지거나 정치적 사상을 믿는 사람들까지 유대인으로 몰려 수용되곤 했다. 나치 독일의 횡포가 심해질수록 '유대인'의 정의는 점점 넓어져갔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아렌트가 말하듯이, '유대인'의 정의로부터 유대인들 본인들이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반유대주의는 물론, 아렌트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규정한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과 정반대의 역할을 했다. 근대 반유대주의는 유대인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들의 자연적인 특징(눈 모양, 생김새, 유전자 등)에 국한시킨다. 그렇게, 아렌트는 근대 유럽의 유대인들은 '자연으로부터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외됨으로써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지적한다.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규정할 자유를 박탈하면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유대인'이라는 임의적 집단에 근거한 대량살해를 강제하기 쉽게 만들었다. 즉, 근대 반유대주의는 필연적으로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길을 닦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렌트는 반유대주의를 유대민족에게만 반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 반하는 범죄'로 비난한다.


원자폭탄과 자연, 그리고 인종차별

Fy_uJ6SWAAAVnZm.jpeg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안 머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결과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행동 사이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정치적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아렌트의 저서는 20세기 후반부에 등장한 인간 행동과 자연의 경계를 허문 여러 시도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원자폭탄의 개발자를 모티브로 한 영화에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안 머피가 말하듯이 원자폭탄으로 인간은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그러나, 원자폭탄이 낳은 철학적 논쟁은 어쩌면 원자폭탄 그 자체만큼이나 길고 명징하게 철학적 담론 속으로 녹아 들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떤 인간들이 자연을 지배하게 되는가? 그리고, 지배받는 '자연'에 간혹 다른 인간들이 속하지는 않는가?


기후위기 시대에 이 질문들은 새로운 긴급성을 띤다. 우리는 아렌트가 경고한 바로 그 순간을 살고 있다. 인류는 원자를 쪼갠 것을 넘어, 이제 행성 전체의 기후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해수면 온도, 빙하의 양—이 모든 것이 인간의 '행동'에 의해 변형되었다. 아렌트가 말한 '자연 속으로의 행동'은 이제 지구 전체를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행동의 결과가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유대인들이 '유대인'이라는 정의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말했듯이, 기후위기에서도 특정 인간들은 '자연에 가까운 존재'로 규정되며 소외된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2015년 파리기후협약(COP21) 협상 과정을 분석한 정치학자 매튜 패터슨(Matthew Paterson)의 연구에 따르면, 협상 테이블에 참여한 195개국 대표단 중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핵심 협상 그룹은 주로 선진국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투발루, 키리바시와 같이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태평양 도서국가들의 대표는 협상에 참여했지만, 그들의 제안—1.5도 목표 설정,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보상 메커니즘—은 초안 단계에서 대부분 약화되거나 삭제되었다.


cop15-logo-en-web2.jpg.jpg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의(COP15)


더 구체적인 예도 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의(COP15)에서는 최종 협정문이 미국,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배출국들만 참여한 비공개 회의에서 작성되었다.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군소 도서국가들은 이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에티오피아 대표 메레스 제나위(Meles Zenawi)는 당시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태평양 섬나라 주민들은 '기후 난민'으로, 아프리카의 농민들은 '기후 취약 계층'으로 정의되지만, 정작 그들의 목소리는 기후 정책 결정 과정에서 들리지 않는다. 기후정의 연구자인 타냐 뮤니에(Tahnia Muñoz)와 팀 하이필드(Tim Highfield)는 2020년 논문에서 주류 기후 담론이 글로벌 남반구 주민들을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재현하며, 그들의 능동적인 적응 전략과 토착 지식을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의 경우를 보자. 방글라데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5퍼센트도 차지하지 않지만, 세계은행 보고서(2021)에 따르면 2050년까지 기후변화로 인해 1,300만 명 이상이 국내 이주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21년 글래스고 기후회의(COP26)에서 방글라데시가 요구한 '손실과 피해' 기금은 선진국들의 반대로 구체적인 재원 조달 없이 '대화 포럼'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결정은 내려졌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나치가 유대인을 생물학적 특징으로 규정했듯이, 기후위기 담론은 특정 집단을 지리적, 경제적 특징으로 규정하며 그들을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제한다. 인류학자 제이슨 무어(Jason W. Moore)는 저서 《Capitalism in the Web of Life》(2015)에서 이를 '값싼 자연'(cheap nature) 개념으로 설명한다. 특정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자연'의 일부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을 착취 가능한 자원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말한 '정의로부터의 소외'가 기후위기 시대에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인종차별과 혐오로 아직도 얼룩진 세상 속에서, 아렌트가 10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너머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자연을 정복한다는 인간의 오만이 결국 다른 인간들을 자연으로 환원시키고, 그들을 역사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만들 때, 우리는 아렌트가 경고한 전체주의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고문헌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1963, 한길사, 김선욱 역.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1998, 한길사, 이진우 역.

Arendt, H. Between Past and Future: Eight Exercises in Political Thought. (New York, 2006).

King, R.H. Arendt and America (Chicago, 2015).

Novick, P. ‘Self-Hating Jewess Writes Pro-Eichmann Series’ in The Holocaust in American Life.’ (Boston: Houghton Mifflin, 1999).

Paterson, M. "Who and What Are Carbon Markets For? Politics and the Development of Climate Policy." Climate Policy 12:1 (2012), 82-97.

World Bank. "Groundswell Part 2: Acting on Internal Climate Migration." 2021.

Muñoz, T. and Highfield, T. "Tweeting disaster: hashtag publics and the social media communication of climate change." Information, Communication & Society 23:11 (2020), 1644-1659.

UNFCCC. "Report of the Conference of the Parties on its fifteenth session, held in Copenhagen from 7 to 19 December 2009."

Moore, J.W. 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Ecology and the Accumulation of Capital. London: Verso,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