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평생 잊지 못할, 혹은 평생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평생 잊지 못할, 혹은 평생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은 기록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평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인생에 기억을 조금이나마 더 붙잡아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록이 없다면 찬란한 반짝임은 내 머릿속에서 금방 잿빛으로 사그라들 것이다. 그 찬란함을 종이 위로, 모니터 위로 한 자 한 자 옮겨 나가는 과정만이 평생이라는 단어에 의의를 더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잊고 싶지 않은 일련의 사건 하나를 기록하기로 했다. 내가 잊을 수 없도록, 힘들 때 어느새 묻힌 기억을 다시 꺼내 들어 일어설 수 있도록, 글자 하나하나를 수놓아 글을 쓰기로 했다. 언젠가는 글이 나를 구원할지도 모르지! 인생이란 참,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니 말이다.
삶을 가장 재미있게 사는 방법은, 시험을 치기로 하고 딴짓을 하는 거라는 누군가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시험이 다가오면, 시험공부 외의 모든 일이 즐겁다. 그게 만약 고전 시가 읽기라도, 책상 청소하기라도. 그래서 나는 2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동안 정철과 윤선도의 작품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양심 상, 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었다. 노력하지 않았으니 점수가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험을 망하면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거 같았는데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충격받은 건 또 아니었다. 지금부터 잘 하면 되지, 뭐.
나는 과학을 좋아했다. 과학은 아름답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일상생활에서 가졌던 의문 하나하나에 만족할 만한 답변을 던져 주는 과목이었다. 사소한 현상에도 원인과 결과는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는 과목이다. 이를테면, 탄산음료의 뚜껑을 열었을 때 기포가 솟아오르는 이유라거나, 기찻길 사이에 틈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과목이었다.
과학 선생님은 상냥했다. 선생님 혼자 말하는 수업 말고, 질문하고 대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을 원했다. 나는 그게 즐거워서 선생님께서 질문을 던지실 때마다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내 뒷자리는 전교 1등에 2학년 전교 부회장이었다. 걘 똑똑했고, 모두에게 주목받았다.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면, 걔는 망설임의 여지 없이 답했다. 내가 조금 더 늦게 걔와 비슷한 답을 하면, 머릿속으로는 걔의 대답을 내가 따라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뭔가 찜찜했다.
그래서 빨리, 정확하게 대답하려 애쓰다 보니, 선생님은 나를 인식했다. 그날 나가야 할 진도는 다 나갔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던 날. 선생님은 대뜸,
“이름을 외워야겠다.”
“마스크를 쓰다 보니, 애들 이름이 헷갈리고, 그래서 자리 배치도를 보며 외우고 있는데... 그게 쉽지는 않네.”
음, 그렇군요. 나는 친구들 이름을 쉽게 외우지 못하는 편이었고, 고백하자면 지금은 10월인데 아직도 우리 반 친구들 이름을 완벽하게 전부 외우지 못했다. 나는 전학생이었고, 다들 내 이름을 제대로 불렀는데 나는 친구들 이름을 헷갈려서 고역을 치렀다. 전학생이 아니었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그래서 담임 선생님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시간씩 수업하는 과학 선생님이 내 이름을 전혀 모른다 해도 기분이 나쁠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우리 반만 알면 되지만, 그 선생님은 수업 들어가는 모든 반에서 아이들 이름을 알아야 하는 거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선생님께선 자리 배치도를 살펴보다 내 뒷자리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연달아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학교에서 남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읽는 편이었으니 아마 그때도 책을 읽고 있었으리라.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헐. 선생님. 저 뭐 잘못했어요? 아니, 수업을 열심히 듣길래 그냥.
아싸. 난 쾌재를 불렀다. 내가 과학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는 사실을 선생님도 알고 계셨다는 게 기뻤다. 나는 특별히 친하다 할 친구 하나 없는 전학생이었고, 그래서 1학년 때완 달리 자연스럽게 소심해졌다. 덕분에 목소리도 작아졌고, 거기다 내 목소리는 특색이 없다고나 할까, 목소리 톤이 낮아서 내 목소리를 들어도 내가 대답했다는 사실을 알긴 힘드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 노력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니, 내 노력을 선생님께서 잘 모르실 거라 믿었는데. 조금 기분이 좋아서, 그날 뒤론 더 열심히 질문에 답했고, 더 집중하고 더 성실하게 수업에 임했다. 공부가, 수업이 즐겁다는 것도 사실 우습지만, 그 시간은 항상 즐거웠고 어려운 내용은 어떻게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몇 번이고 설명해주셔서 머릿속에도 잘 들어왔다.
시간이 흘러, 어제, 그러니까 12월 5일 금요일의 마지막 교시에 선생님이 우리가 적어낸 시험 답안지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우리 반은 점수 확인을 했다. 과학은 선생님이 두 분 계시는데, 일단 그 선생님 파트만 먼저 채점해서 보여주셨다. 난 전학생이라 마지막 번호였고, 번호대로 점수를 확인했으니 나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두근거리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걸어서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께선 웃었다. 그건 확실한 미소였다. 입이 가려져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를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느닷없이 주먹을 쥐어 내밀면서 그 눈빛으로 나를. 나는 한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왜 선생님이 주먹을 쥐고 계시지? 주먹 인사를 하자는 의미인가?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건가? 저 눈빛은 뭐지? 잘 쳤다는 의미인가? 뭐지? 대체 뭐지?
다 쓸 수도 없는 의문들이 순식간에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그 3초가 나에게는 몇 분으로 느껴졌다.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진 못했지만, 일단 주먹을 쥐고 선생님의 주먹에 맞대니 선생님께서는 내가 선생님의 의도를 잘 이해했다는 듯이 또 웃으셨다. 그리고 선생님께선 내 답안지를 펴서, 동그라미만이 그려진 답안지를 보여 주셨다.
“다 맞았나요?”
“그럼.”
“앗싸!! 진짜 다 맞은 거에요? 대박, 대박이다. 사실 제가 약간 걱정했었는데... 너무 잘 나온 거 같아서 기뻐요.”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네가 노력한 만큼 원하던 결과가 잘 나온 것 같아서 선생님도 기쁘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나는 자리로 돌아오면서, 선생님의 그 눈빛과 맞닿은 손을 어쩌면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평생 잊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눈빛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를 헤쳐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노력하고, 그 노력을 마침내 인정받는 것은 정말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황홀했다.
어쩌면 내가 울고 있을 때 그 눈빛이, 그 목소리가 다시 떠오를지도 모르지. 나는 그 빛 같은 목소리 때문에 어떤 것을 잃어도 절대 자리에 주저앉아 멈춰 있지 못하고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내가 어느 날 주저앉았을 때, 비로소 나를 일으켜 세울 목소리...그 황홀한 떨림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목표를 위해 한시라도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결국에는 그 목소리가, 그 미소가 나를 구원할 것이다. 우습지도 않군!
나는 그 순간, 선생님의 목소리를 평생 잊고 싶지 않았다. 물론 평생이란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세월의 바람 앞에서 감정은 한없이 얄팍하니 평생 잊지 않겠단 결심이, 약속이 무색하게 소중한 순간을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평생 너를 기억하겠다는 말은 로맨틱하지만 그 말의 진정성을 생각하면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우리 평생 친구 하자, 우리 싸우지 말고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연락하자. 전학 가도 나 잊지 마, 보고 싶을 거야...
새 학기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무리짓는다. 반 안에서 친한 사람과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구분이 생긴다. 내 무리와 쉬는 시간에 함께 놀고, 조별 활동을 같이 하고, 밥을 같이 먹으며, 체육 시간에 짝을 이룬다. 학교가 파하면 다 같이 조잘거리며 교문을 나서고,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우정의 증표라며 물건을 하나씩 계산하고 나온다. 그 물건은 보통 한 달 정도 지나면 잃어버리거나, 부러지게 마련이다.
반이 바뀔 때마다, 매번 이런 말들을 나눴다. 우린 평생 친구야. 싸우지 말고 오래 가자. 계속 연락하자. 나는 초등학교에서 6번, 중학교에서 2번씩 반이 바뀌었고 그때마다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8명까지의 무리를 만났지만 지금 연락하는 것은 7명뿐이다. 우습군! 맹세란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어린 시절의 우리에게 영원이란 너무나 가벼운 단어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오글거리는 말들이 있었기에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이 행복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평생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평생을 약속하고 또 입 밖으로 내뱉는다. 자칫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말들이 쌓여 그 속에서 평생이 아니라, 그냥 오늘 함께라서 즐거운 날이 만들어진다. 애정을 갖고 내뱉는 말에 의미 없는 말이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하고 또 수없이 많은 약속을 잊는다. 그러나 우리가 잊은 모든 약속이 의미 없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잊힘이 허공에서 바스라지는 것도 아니다. 분명 언젠가는, 언젠가는 잊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명의 불꽃이 다해 꺼질 때까지 기억하고 싶은 것도 있게 마련이다. 영원이란 말은 불확실하고 대개 지키기 어렵기에 더욱 아름답다. 평생을 함께할 기억이란 없을 것을 알면서도 지금 가진 기억이 아름다워서 평생이라 수식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