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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Jun 16. 2019

조각 덩어리
(콜미바이유어네임 2018)

영화 속 '앤딩' 돋보기

 사르트르 희곡 <닫힌 방>에는 지옥이 나온다. 불이나 용암, 무시무시한 형틀 따위는 없다. 단지 폐쇄된 공간에 3명의 사람이 있을 뿐. 존재는 즉자(자신)와 대자(타자)와의 투쟁의 장이다. 우선 '나'는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고자 한다. 한편 다른 사람이 보는 '나' 역시 내 존재를 규정하는 요소다. 그 균형은 쉽게 무너진다. 


 스스로를 인식하는 나는 나 자신 단 하나지만, 나를 규정하는 존재는 적어도 둘 이상이다. 사르트르 <닫힌 방>에서 나와 다른 2명의 누군가가 있다고 묘사한 건 지옥의 마지노선 같은 것이다. 지옥이 그럴진대, 실제 생활에서 수많은 사람이 규정하는 존재에 대한 침해는 훨씬 더할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와 비아와의 투쟁이다"라 말했다. 역사 역시 존재의 원리에 빗대어 볼 수 있다. 아는 즉자(자신), 비아는 대자(타자)인 것이다. 관점에 따라 즉자와 대자는 분명하지만, 관계의 균형에 따라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 


 한국사의 주체, 즉자는 한국이다. 그리고 타자는 다른 나라다. 발생한 일은 같을지언정, 어디에 구심점이 있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령 일본이라는 타자에 구심점이 있다면 한국의 국권을 침탈한 것을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될 것이다. 한편 한국에 구심점이 있다면 같은 내용은 반인륜적인 침탈이 될 것이다.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를 이끄는 동력은 즉자와 대자 사이에서 분출하는 에너지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즉자와 대자의 대립, 존재의 위협을 다루지는 않다. 오히려 자발적인 타자화와 그 사이에서 오는 에너지를 통해 존재를 찾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엘리오는 손님인 올리버에게 이끌린다. 성적 쾌락뿐 아니라, 갈등, 교감을 한다. 동성 간의 애정행위와 관계.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크게 공감을 하면서 보지는 못했다. 


 강렬한 공감대를 느낀 건 앤딩에서다. 그 해 여름, 올리버와 작별을 한 엘리오가 겨울에 저 노하 한통을 받는다. 올리버다. 그는 엘리오에게 만나고 있던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말을 들은 엘리오의 복잡하고도 슬픈, 그리고 극복하는 듯한 모습까지 앤딩에 담긴다. 


 영화가 단순한 동성연애나, 쾌락이라는 소재에 천착한 작품이 아닌 게 확실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모든 소중한 기억은 자신을 살점을 떼내는 경험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을 회복하고 성장하는 것.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 제목이자,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 했던 말. 이 떠올랐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엘리오 라 부르고 올리버는 엘리오를 올리버라 부른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흡사 신성우 서시의 한 구절인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도 떠올랐다. 


 누군가를 깊게 좋아한다는 건 자신의 일부를 떼어주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내가 가지는 고유한 즉자로서의 영역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쉽게 말해 주도권이랄까. 거울을 보고 나를 다 담는 것. 상대의 눈에 비친 내가 어떨까 생각하는 건 내가 가진 즉자로서의 권한을 상대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타자화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라는 건 즉자의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공공연한 선언이다. 나의 일부를 떼어내 네게 주겠다는 것. 그렇기에 모든 아름다운 기억은 아프다. 어쩌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 이상으로.


 앤딩은 그 모든 것을 함축한다. 풍성했던 여름, 강렬한 추억. 자신의 일부, 아니 전부를 내주었던 기쁨과 상실의 고통. 길고 긴 앤딩은 그 모든 걸 함축하는 것에 비해 너무도 짧다. 그 모든 걸 버티고 완전히 극복해 내기에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결코 길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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