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nd Jul 09. 2019

왜 사냐고 묻거든(2019 마녀)

영화 속 '이름' 돋보기

 인간은 어릴 때부터 '왜'를 달고 산다. "무지개는 왜 생기는 거야?" "아 그건 공기 중에 아주 작은 물방울 입자가 빛을 반사하면서 생기는 거야~" 이렇게 애써 설명하면. "그건 왜 그런 건데?"라는 또 다른 왜가 나온다. '왜'는 존재를 향할 때 잔인해진다. '왜 사는가?'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냥 살아있으니 사는 거다. 어딘가 좀 허전하다. 비슷하게 이유를 만들어낸다. 


 존재에 대한 왜는 끝내 절대원리에 닿는다. '갓파더'. 너도 나도 그 누구도 모르지만 '그분'의 뜻에 따라 너와 내가 만들어졌다는 것. 얄궂게도 그래서 그 뜻이라는 것은 결국 아무도 모른다. '다 뜻이 있겠거니' 


 갖다 붙이기도 좋다. 잘 되면 잘된 대로, 지지리 복이 없으면 또 없는 대로 다 어떤 뜻이 있겠거니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의 존재가 어떤 목적이 있다고 믿으면서 그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평생 모른다는 것이다. 목적은 사전에 만들어지는 것에 반해. '종교적 믿음'은 사후적이다. 기도대로 이뤄지면 이뤄진 대로, 정 반대면 그 나름대로 그분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왜'라는 목적성에 빠지면 그만큼 잔인해진다.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존재하는 의미가 없다. 다행히 인류는 통상적으로 상호에 대한 애정은 지극히 보편적이다. 사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저마다 믿는 '그분'의 뜻이 있겠거니 한다. 


 인류애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무너지고 정말 순수한 '왜'가 발현된다면? 생지옥이다. 영화 '마녀'는 목적만 남은 생지옥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영화에는 통제 가능한 인간 병기가 되는 것이 목적인 아이들이 나온다. 분명하고 뚜렷한 목적이다. 그만큼 목적성을 잃게 되는 순간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다. '인간 병기가 못 되면', '통제가 불가능하면' 가차 없이 죽임을 당한다. '왜'가 그토록 잔인한 이유다.



 '통제불능'이라는 이유로 폐기 처분되는 인간병기들. 그중 가장 통제 불가능한 아이가 살아남았고 구자윤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본래 존재의 '목적'이었던 능력을 쓰면 죽게 되는 아이러니한 존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본래의 목적을 버려야 한다. '구자윤'은 본질적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 자체로서의 실존적 존재를 나타낸다. 누구에게 부여받거나 의존하는 '본질'이 아니라 우선 '실존'하며 만들어지는 삶이다.


 그렇게 농가에서 단지 존재로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자윤에게 피바람이 몰아친다. '수많은 목적'들이 개입한 것이다. 원래 자윤의 목적을 살리려 하는 '닥터 백', 목적에서 벗어났다고 여겨 자윤을 제거하려는 '미스터 최', 그리고 본래 만들어진 목적대로 살아가는 자윤의 동기이자, 인간 병기 아이들이 그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적을 충실하게 따르는 이들에게 이름은 없다. 본질을 운운하다가 정작 실존하는 것들을 놓친다. 결국엔 목숨까지도. 한편 자윤의 목적은 실존 그 자체다. 왜 사냐고 묻는다면 그냥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순수한 척 위장해, 관련 인물에게 접근한 것도 죽어가는 자신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순수한 의도. 그 덕에 자윤은 목적성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 살아남았다. 그럼으로써 가족과 친구라는 목적이 생겼다. 실존 자체가 목적을 만든 것이다. 실존이 그 자체로 가치롭게 되는 지점이다. 


 목적은 끝이 없다.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잔잔할 틈이 없다. '왜 사냐'라고 묻는 물음에 그저 웃을 수 없는 까닭이다. 정작 그럴듯한 이유, 목적을 만들며 아등바등하는 탓에 하루하루 죽어간다. 정작 있는 그대로의 존재하나 온전히 못 얻은 채로.  

 

 잔혹하지만 잔인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구자윤의 잔잔한 생존기를 응원하게 된다. 목적성에 학대당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은 아닐까. 

 

     

이전 16화 조각 덩어리 (콜미바이유어네임 20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