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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Jun 23. 2019

그냥 (기생충 2019)

영화 속 '현실' 돋보기

 ‘뿡뿡이가 좋아요! 왜? 그냥 그냥 그냥~’

어릴 적 꽤 유행했던 어린이 프로그램 ‘방귀대장 뿡뿡이’ 테마곡 의 내용이다. 

‘그냥 그냥 그냥’을 어른이 했더라면 어땠을까?


 좀 어색했을 것이다. 단순히 귀엽고 말고를 떠나서 어른이라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감흥을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원인을 분석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웃겨서 좋다거나 하다못해 방귀를 잘 뀌어서 좋다거나. 


 ‘분석’은 곧 ‘계획’이 된다.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계속 뿡뿡이를 좋아해서 나도 방귀 뀌는 걸 연습한다던지, 뿡사모(뿡뿡이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도 만든다든지. 의외로 뿡뿡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걸 알고 난 후에, 허가를 받아 캐릭터 사업에 뛰어든다든지.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다. 부잣집에 빌붙을 계획을 세운 아들에게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어린이가 어른을 동경하듯. 


 모든 계획에는 변수가 따른다. 더구나 대가가 큰 계획일수록 그 변수는 크다. 뭣도 없는 가족이 감당하기엔 벅차다. 미숙한 어린애가 어른 껍데기만 뒤집어쓴 모양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호기심에 차를 끄는 것 같다. 결말은 뻔하다. 꽤 극적이긴 하지만, 인상 깊진 않다.


 ‘왜?’ 잡힐 듯 말듯한 영화 속 메시지에 대한 물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특별한 메시지도 여운도, 감독의 생각도 뚜렷하게 알 수가 없어서였다. 다큐도 이보다 뚜렷한 메시지가 있을진대. 웬만해선 어떤 의미라도 내 멋대로 확대해서 찾아낼 텐데, 딱 ‘이거다’랄 게 없었다. 


 “그냥 좋아서요....” 코너 관련해서 불특정 시민을 인터뷰를 하다가 “왜 그 음악이 좋아요?”라고 물어보면 거의 매번 돌아오는 대답이다. 재차 물어보고 간절히 답을 구하면 그제 서야 ‘멜로디가 좋다, 가사가 좋다’라는 대답이 나오고 또 물어보면 ‘원래 이런 걸 좋아해서 좋아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럴듯한 대답이긴 한데, 결론은 ‘좋아서 좋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이 빠지니까, 굳이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선을 넘지 마라’ 빨간색 크레파스로 명확히 그어놓으면 좋을 것 같은 그 선. 말과 행동은 조심해서 넘지 않는다 해도. ‘냄새’는 어쩔 수 없다. 쉽게 넘어버린다. 


 가장 억울한 때는, ‘내 탓을 할 수 없을 때’다. 내키지 않지만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를 뱉으면, ‘그래도 내 잘못도 있지’하며 책임을 인정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뿌듯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어느 정도 통제력이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상관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주제넘게 말을 보태는 것. 더럽고 치사하지만 스스로 타협하고 머리를 조아릴 수 있다. 그런데, 뼛속 깊은 곳까지 박힌 ‘냄새’가 어떻다고 하는 건, 고칠 수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잘못도 아니다. 그럴 때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다.


 기택은 그런 억울함을 느끼고 생의 가장 큰 에너지를 담아 상관을 죽인다. 별 이득도 없는 살인. ‘그냥’이다. 대부분은 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벌레 앞에 선 단순히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몸서리를 치고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이 된다. 한 트럭이 와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는 힘든데 말이다. 


 혐오나 적개심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다른 냄새다. 눈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것도 필요 없다. 눈에 보이지 않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분위기나 냄새면 충분하다. 다름은 곧 틀림이다. 


 냄새는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부르디외가 언급했던 아비투스의 굴레다. 벼락부자가 하루아침에 클래식을 듣지 않고, 부동산 투기업자가 시를 읊지 않듯. 그 냄새는 돈 냄새만은 아니다. 자신조차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영혼의 냄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라’ 그럴듯한 세계시민의 자세다. 한데 그러긴 쉽지 않다. 특정 계층, 특정 인물의 잘못도 아니다. 그 피해자는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계획'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막이 내리면 잔혹한 말만 남는다. ‘그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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