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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Jul 22. 2019

내 죄를 알렸다(2019 라스트미션)

영화 속 '대사' 돋보기 

 "유죄입니다" 

역대급 마약 운반책에게 선고를 내린 건 판사가 아니었다. 죄를 추궁하는 검사의 영향도 없았다. 배심원의 인지상정 탓도 아니었다. 스스로를 단죄한 건 다리를 저는 고령의 할아버지였다. 


 실제로 그랬으니 별 안타까움은 없다. 극 중 정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의 가족이나 변호인, 배심원 역시 동요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크게 동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그가 선언한 '유죄'에 함축된 것이 다른 부분이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백만 달러의 마약을 운반한 것 따위가 아니다. 그의 삶 전반에 대한 스스로 하는 단죄다. 


 얼은 교과서적인 꼰대다. '참전용사'에 한 때 사회의 절대 주류인 '백인' 인 데다가 인터넷 같은 새로운 기술을 같잖은 것 취급하는 할아버지다. 바꿔 말하면 과거에 취해있고 죄의식 없이 순수한 인종차별주의에 가족을 돌보지 않고 제 멋에 취해 사는 전형적으로 안 좋은 아버지 세대의 모범이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힘없어 보이는 몸짓은 그를 온화하게 보이게 한다. 하지만 "지난 일 가지고 지금 이래야겠어?" "꽃은 아름다워 어떻게 그것을 보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라고 아내에게 반문을 할 때에는 '정신 차리려면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또 그가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에 대한 통탄과 함께.


 마약 운반은 늘그막에 그에게 찾아온 행운이다. 돈을 벌게 해 주었음은 물론이고 마약 운반에 빗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 2번은 정확히 모른 채 물건을 배달해 줬다. 3번째부터 얼은 정확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인지했다. 수많은 사람 그리고 그에 관련한 가족과 친구까지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했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그리고 사회활동이 보람 있고 재밌었을 테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에 가족도, 주변도 못 본 채로. 가족이 속상해하고 마음이 다치는 것도 몰랐을 수 있다. 처음 몇 번은. 그러나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마약 운반을 계속 모른 채 할 수 없는 것처럼. 가족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선택을 한 것이다. 어디로 가지 않을 것만 같은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편으로. 아플 줄 알면서도 아픔을 준 것이다. 어렴풋이나마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뚜렷이 인지하고 인정하게 되는 건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눈이 잘 안 보이고, 다리를 절게 되고, 인지능력도 퇴화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 둘 떠나갈 때쯤. 그런 점에서 얼은 어느 슈퍼 히어로 못지않은 진정한 주인공이자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잘못과 죄를 가감 없이 바라봤고 인정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히어로물속의 영웅은 고뇌한다. 다만 겉으로일 뿐이다. 결국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해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자 역시 고뇌한다. 그러나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여전히 유약하다. 하지만 굳건하다. 스스로의 죄를 온전히 깨우친 자는 '억울함'에서 해방되기에. 


 "얼굴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규칙을 어기고 아내의 임종을 지킨 얼이 조직원에게 맞아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수사관이 묻는다. "그럴만했소" 삶의 억울함에서 해방된 현자의 모습이 아닐까.

 

 그는 법정에서 누구의 말에 휘둘리거나 미련을 보이지 않는다. "유죄다" 마약 운반뿐 아니라 그의 삶을 말하는 듯하다. 그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유죄'인 것이고. 그것을 죽기 전에 깨달은 그는 틀림없이 현자이자 부러운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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