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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ug 02. 2020

비극의 수단 (현기증)

영화 속 '생각' 돋보기

“너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고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칸트의 도덕 법칙에 따르면 인간은 수단이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화과정에서 뇌가 발달한 인간은 큰 손톱과 발톱, 이가 진화하는 대신에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도구의 영역은 점차 확장됐고, 확장되는 영역에 인격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도구적 존재인 인간은 타인의 인격 자체를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고, 인간이 만든 도구로 인해 인간이 도구화되었다.


 영화 <현기증>(1958)에선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이자 피 도구적 존재인 인간의 모습이 촘촘히 엮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내를 살해하고 유산을 가로채려는 남편이 아내 ‘역할’을 해줄 도구를 찾으면서부터다. 그는 아내를 닮은 쥬디라는 여자가 선택해, 친구인 전직 경찰 스카티를 속인다. 스카티는 친구 아내의 위장된 자살을 목격해 신빙성을 높이는 도구가 된다. 이때, 스카티의 고소공포증은 특유의 개성이 아니라, 스카티라는 도구의 성질로 전락한다. 애초에 아내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던 스카티의 친구는 도구를 사용하는 능동적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인물 역시 돈과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상실하고, 도구로 전락한 도구에 불과하다. 

스카티에게 아내를 미행할 것을 부탁하는 스카티의 친구 개빈 앨스터


 죽었던 매들린이 ‘쥬디’라는 이름으로 스카티 앞에 나타나면서, 도구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매들린 역할을 했던 쥬디가 스카티와 사랑에 빠지면서, 매들린의 죽음을 위장한 뒤 쥬디 본인으로 스카티 앞에 나타나는 지점이다. 영화와 원작의 구성이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매들린과 똑같이 닮은 쥬디의 정체가 마지막에 알려지는 반면, 영화에서는 관객이 바로 알 수 있게끔 해준다. 이로써 매들린과 닮은 쥬디라는 인물의 미스터리는 축소된다. 대신 스카티가 이야기의 전모를 알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에 따른 결말을 따라가는 서스펜스가 자리하게 된다. 


 미스터리를 풀어갈 때 관객은 자신과 가장 동일시할 극 중 인물을 찾는다. 보통 관객과 비슷한 정보량이 주어진 인물이거나 작품을 이끌어가는 화자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분량이 원작과 달라지면서, 이미 사실을 다 아는 관객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카티에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쥬디의 독백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관객이 동일시하는 인물은 쥬디다. 쥬디를 매들린의 대리인으로 이용하는 스카티의 비인격적인 행위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이유다. 


 스카티는 사랑에 빠진 매들린을 현기증 때문에 못 구했다는 자책에 사로잡혀 있으며 매들린을 잊지 못한다. 매들린과 꼭 닮은 쥬디를 매들린처럼 입히고, 매들린으로 살게 하는 것은 쥬디를 그 자체의 인격으로 대하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매들린의 대리인 역할이라는 도구적 존재로 이용하는 것이다. 친구에게 이용당한 스카티를 동정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영화는 죽음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에서 인간이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끝부분에는 쥬디의 정체와 사건의 전모를 눈치챈 스카티가 쥬디를 매들린의 대리인으로 삼아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 역시, 스카티가 도구화의 피해자이면서도 명백한 가해자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쥬디를 데리고 시계탑에 올라가는 스카티


 “인간은 도구를 만들었고, 도구는 다시 인간을 만든다.”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매클루언의 말에서 ‘도구’는 미디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디어로 인한 감각기관의 확장은 곧 감각 체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렇게 변화된 인간의 감각 체계는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다. 때문에 앞선 매클루언의 말은 미디어 자체가 곧 메시지가 된다는 명제의 전제가 된다. 그가 전제한 말은 미디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기증>의 앤딩은 인간 자체마저 도구화된 세상의 비극을 암시한다. 스스로를 자기 자신이 아닌, 매들린 역할을 하는 도구로 삼은 쥬디는 결국 시계탑에 올라온 수녀를 보고 겁에 질려 뛰어내린다. 정신이상 증세를 가진 매들린의 영향, 혹은 죄의식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쥬디는 스스로를 도구로 삼으면서도, 스카티가 그 자신 자체를 사랑해주기를 원했다. 도구적 수단과 본질적 목적이 상충하는 가운데, 영화의 결론은 인격을 상실한 쥬디를 벌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쥬디가 매들린이라는 인물로 살았던 도구적 세상이 다시 쥬디의 세상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도구로 전락시켰던 쥬디의 세상은 다시 쥬디를 만들고, 그 세상의 결말은 죽음이다. 


 쥬디가 떨어지고 30초가 채 지나지 않아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마지막에 장면에서 교회 시계탑 위에 서서 떨어진 쥬디를 바라보는 스카티를 보여준다. 확실히 고소공포증을 이겨낸 스카티의 모습이다. 이런 스카티의 세계 역시 인격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세상이다. 사랑했던 매들린의 대리인으로 쥬디를 이용하고,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뒤에는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한 도구로 쥬디를 이용했다. 


 쥬디의 죽음 이후 곧이어 스카티를 비추고 암전 되며 황급히 끝이 난 영화는 마치 스카티의 결말도 암시하는 듯하다. 스카티가 만든 인격이 도구가 되는 세상은 쥬디의 경우가 그랬듯, 스카티의 운명을 만들 것이다. 쥬디의 죽음이라는 다소 급작스러운 앤딩은 여운을 남기고, 여운의 잔상은 스크린 너머의 현실로 향한다. 이는 관객에게 영화 속 이야기와 닮은 현실의 마지막은 어떨지 생각해보게 한다.  

시계탑 밑으로 떨어진 쥬디를 바라보는 스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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