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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ug 23. 2020

부름에 대하여 (그랜토리노)

영화 속 '이름'돋보기 

 ‘이름’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선 이름은 평생을 함께할 당사자에게 중요하고 미치는 영향 또한 가장 크다. ‘이름’은 자기 존재를 표상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스스로 직접 자신의 존재를 부름으로써 그 자신을 인지할 수는  없다. 이름과 존재의 긴밀성으로 봤을 때 이름은 분명 자신의 것이지만,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동요 ‘내 동생’에서 내 동생의 별명이 여러 개이듯. 개인이 불리는 말도 여러 방식일 수 있다. 부르는 이름의 권리는 이름의 주인이 아니라 타인의 몫이다. 


 영화 <그랜 토리노>는 월트 코왈스키가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면서 즉자로서의 자신과 타인이 보는 타자로서의 자신을 통합하고 세상에 융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코왈스키 그게 내 이름이네.” 월트 코왈스키는 부인과 사별하고 부인과 가깝게 지낸 신부를 만난다. 그때 자신을 친근하게 ‘월트’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거부하고 ‘코왈스키’로 정정해준다. 월트는 자신을 부르는 타인의 방식을 수용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친근함의 방식이라도 말이다.


 월트는 옆집에 사는 수가 ‘월리’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작 월트 자신은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부른다. 몽족 사람들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고 H가 묵음인 hmong족을 ‘허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입에 붙지 않고 모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좀처럼 잘못된 발음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편하게 부른다는 것이다. ‘타오’를 타월로 부르고 유아를 ‘유유’로 부른다. 자신에게는 맞는 이름이라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이름’의 문제는 생활 저변으로 확장된다. 몽족 파티에 초대받은 월트는 눈을 쳐다보면 실례라는 것과 어린아이라도 머리를 만지면 안 된다는 몽족 관습을 듣고는 ‘이상하다’며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월트의 막힌 관계의 벽을 허물게 된 건 역시 융통성 없는 전통이었다. 의도치 않게 옆집에 사는 타오를 구해주게 된 것을 계기로 어떻게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몽족의 앞 뒤 재지 않는 관습에 의해 음식이며 꽃을 억지로 선물 받게 되는 것이다. 또 차를 훔치려 한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타오가 괜찮다는 월트의 집에서 노동을 하게 되는 것도 일방적이다.          


 그렇다고 월트가 바뀐 건 아니다. 원주민을 몰아내고 만든 이민자의 나라면서 여전히 허황된 미국적 가치와 늙다리 같은 태도를 견지한다. 하지만 오히려 한 인물의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이야기로 설득한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큰 거부감이 들게 하진 않는다. ‘멜팅팟’ 같은 용어로 오그라들게 하거나 반감을 사는 게 아니라 좀 어수선하긴 하지만 서로의 분명한 가치를 고집하면서도 섞이지 않은 채 어우러지는 ‘샐러드볼’을 은유하며 동화 같은 결말보다는 실제 같은 진짜 관계를 말한다. 


 월트가 방문한 병원에서 직원은 월트의 성인 ‘코왈스키’를 제대로 못 부르고 ‘코스키’라 부른다. 월트는 잘 알아듣는다. 또한 영화 후반부 월트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던 어린 신부에게 월트라고 부르도록 한다. 월트는 월트의 세상 자체와 가까웠던 그 자신의 이름에 대한 집요함을 놓음으로써 자신을 칭하는 세상에 문을 연다.  


 월트에게 세상은 상호작용할 곳이 아니라 이미 스스로 생각한 대로 규정된 곳에 불과했다. 그런 세상에서 믿을 건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다. 때문에 월트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의 방식대로 행동하고, 종교의 모순과 비합리성을 꼬집는다. 월트의 세상에선 월트 자신이 곧 세상이었다. 그러나 월트의 마지막엔 월트의 세상을 비집고 들어온 이웃이 있었다. 고해성사를 하게 된 종교도 있었고, 경찰도, 희생을 지켜보는 주민도 있었다. 월트의 이름은 그 자신의 것이지만 마지막엔 여러 방식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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