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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ug 27. 2020

반전의 과녁 (메멘토)

영화 속 '대사' 돋보기 

 영화 <셔터아일랜드>나 <파이트클럽>처럼 극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에 푹 빠져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있다. 반전의 순간엔, 알고 보니 화자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라던가, 그 화자 역시 관객과 마찬가지로 전체 플롯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믿을 놈 하나 없는 게 맞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그 반전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서까지 찝찝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른 반전 영화처럼 <메멘토>는 재밌다.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반전의 순간, 관객으로서는 풀지 못할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내놓고는 뒤에서 히죽거리는 감독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 영화 <메멘토>는 반전영화이면서도 찝찝하게도 하는 영화다. 


 <메멘토>는 아내를 잃은 남편의 이야기다. 레너드는 괴한이 자신의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충격으로 레너드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영화는 그런 레너드가 범인을 찾아 복수하는 이야기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는 10분 내외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해둔다. 


 처음엔 주인공인 레너드에 대한 동정이었다. 레너드의 상황과 복수를 하려는 그의 노력이 가상했다. 그러다 보니 그를 믿었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게 됐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레너드가 쫓는 것인지 쫓기는 것인지 분간을 못할며 이 말을 중얼거릴 때, 확실히 그에게 동화되었다. 단순히 화자인 레너드를 통해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레너드 그 자체에 동화된 것이다. 정확히 내가 가끔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단순 작업을 하다가 건망증 때문에 드는 생각이 아니라, 근본적인 물음이다. ‘뭘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분명한 상위 목표가 있다. 단순히 그 일이 본질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항상 본질적인 목표를 생각하기보다는 관성적으로 그 일을 하며 본질적인 목표를 잊어버렸다는 자각도 없이 일을 하기도 한다. ‘정확히 무엇을 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일이겠지.’ 하고는 출처가 불분명한 어떤 고정된 기억을 신봉한다.  


 <메멘토>의 레너드도 마찬가지다. 그는 바로 전의 기억을 확실하다고 생각해 메모해둔 기억의 본질인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로 기억한다. 이전 과거와 과거 사이의 기억에 새로운 사실은 추가되지 않고 과거 자신의 기억이 복제되어 결국 이전 과거로부터의 행동만 남는다. 끊임없이 복제되는 행동의 근원인 이전 기억은 더 이전의 기억으로부터 기인한다. 그것은 성폭행당하고 죽은 아내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레너드는 끊임없이 반복한다. 아내에 대한 ‘복수들’이다. 레너드는 이미 아내를 성폭행한 범인을 죽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복수들을 반복한다. 그는 자신이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이유를 아내에 대한 복수로 삼고서는 그 행동들을 반복한다. 사실 레너드 자신이 의도치 않게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서다. 


 레너드는 현재 자신을 믿을 수 없기에, 메모를 했던 과거의 자신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왜곡된 과거라는 전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론에서처럼 끝없는 의심을 통해 남은 것이 ‘생각하는 바로 그 존재’인데 그 존재마저 믿을 수 없다면 회의 끝에 남는 바로 그 존재는 바로 그 존재의 유무조차 장담할 수 없다. 


 <메멘토>의 진짜 반전이 향하는 과녁은 레너드에 동화된 관객이다. ‘내가 뭘 하고 있지’ 당시엔 정신 사나운 내가 하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반전 이후 일상적으로 중얼거리는 그 말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 말은 본질적인 것과 맞닿아 있어야 하지만 끊어져 있는 무의미한 행동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쩌면 <메멘토>의 레너드처럼 살육에 가까운 삽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찝찝하다 못해 오싹해졌다. ‘내가 뭘 하고 있지...’ <메멘토>가 향하는 반전의 과녁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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