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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ug 31. 2020

연결고리 (자전거 도둑)

영화 속 ‘현실’ 돋보기

 영화 <자전거 도둑>을 통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당시 연극에 관한 수업을 듣다가 스스로도 문득 떠오른 질문이었다. 생각 정리를 하지 않고 장황하게 질문했던 것 같은데, 대강 요약하면 이렇다. 


 “교수님 영화나 연극은 진짜 같으면서도 결국은 가짜예요. 어떤 사람의 이야기나 사건이 2시간 정도에 담기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딱 영화의 주제에만 해당하는 장면들만이 모여 있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극 중 인물들도 다 화장실도 가고 할 텐데, 화장실 가는 것도 나오지 않는 것도 그렇고요.” 


 당시 질문을 했던 건 기억이 나지만 특별히 대답을 들었던 것 같지 않다. <자전거 도둑>을 본 요즘에야 그 질문에 대한 방향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자전거 도둑>에서 가난한 노동자인 리치는 작업에 필요한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리치는 아들 브루노와 함께 자전거를 찾아 나선다. 도둑맞은 자전거가 장물로 나왔는지 찾아보고, 목격자를 추궁하기도 하며 자전거의 흔적을 찾아 로마 시내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갑자기 브루노가 뛰쳐나간다. “브루노!” 리치는 아들을 부르며 쫒아간다. 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도둑을 보았다든가, 단서를 찾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브루노는 단지 화장실이 급했다. 담벼락에 노상방뇨를 하러 뛰쳐나간 것이었다. 자전거 도둑을 추적하는 영화 속 이야기의 몰입은 깨졌다. 그러나 자전거를 찾는 두 인물에게는 더욱 몰입되는 느낌이었다. 극 중 인물로서가 아니라 진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중심 소재에서 벗어난 장면이지만, 그보다 상위 개념인 ‘삶’의 연장선을 보여주는 듯했다. 영화는 이야기를 담는 것이 아니라 삶과 현실을 담고 있었다.  


 내가 했던 생각이 그렇게 엉뚱하다거나 기발한 생각이 아니었다. 전후 이탈리아 영화감독들도 그런 생각을 했고,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몰입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아무리 슬프거나 바빠도 영화 속 인물들도 화장실도 가고 할 텐데...라는 생각을 엉뚱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오래전에 그런 생각들을 체계화해서 실현했던 것이다. 극 중 몰입이 깨지는 동시에 영화에서가 아닌 진짜 현실의 이야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자전거 도둑>의 원제는 <Ladri di biciclette>이다. Ladri는 이탈리아로 도둑이라는 뜻을 가진 ladro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영화의 본래 제목을 엄밀히 직역하면 자전거 도둑‘들’이 된다. 리치의 자전거를 훔친 도둑과 결국 자신의 자전거를 찾지 못하고 역시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려던 리치다. 그리고 이 둘 말고도 당시 어려운 노동자들이 마주한 현실에서 자전거 도둑으로 전락했을 사람‘들’을 나타낸다. 


 영화는 이렇게 단순히 특별한 인물의 특수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한다. 영화를 넘어 사회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자전거 도둑‘들’은 영화 안뿐 아니라 현실로 확장된다. 브루노의 갑작스러운 노상방뇨는 영화에 대한 몰입을 깨고 삶과 현실로 나아가는 단초 역할을 한다. 이로써 영화의 메시지는 더 넓게 퍼진다. 밖으로 흘러나온 눈물은 쉽게 마르지만 속에 차오른 먹먹함은 오래 남는다. <자전거 도둑>은 끝이 없는 영화다. 리치와 브루노는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의 인물이며 영화가 끝나도 그 방식으로 살아간다. 영화는 끝이 난 게 아니라 보여주기를 중단한 것일 뿐이다. <자전거 도둑>은 눈물의 영화라기보다는 먹먹함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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