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친구에게 이끌려 교회에 나가게 됐다. 주일학교에 나가 예배도 보고 수업도 받고 성경 공부도 했다. 순수한 신앙심이나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교회를 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교, 품앗이, 하다못해 정신적인 만족 등 어떤 구체적인 이익이 있으니 나가는 것 아닐까.
어른들 못지않게 아이들 역시 그런 곳에 나가는 데는 순수한 신앙심 외에, 실질적이고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예배 후 주는 간식이 될 수 도 있고, 착한 어른들이 해주는 칭찬일 수도 있고, 피아노나 드럼 같은 악기를 배운다거나 또래 친구들과 놀 수 있으니까 오는 걸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모든 것을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엉큼하면서도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다. 바로 ‘기도법’을 익히는 것이었다. 아픈 사람을 낫게 했다는 예수님에게 닿는 기도를 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고, 안면을 텄다고 생각될 무렵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자기 전 깜깜한 방 안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는 것이다. ‘죄 없는 동생을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지금은 특별히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으나, 기회를 주신다면 나중에라도 꼭 갚겠습니다.’
하나님은 답이 없었다. 아니면 외상을 싫어하셨나 보다. 열심히 기도하는 누구는 하나님을 보기도 한다는 데, 나는 보기는커녕 실루엣이나 머리카락 한 올도 볼 수가 없었다. 고독한 기도는 계속됐다. 그럴수록 의심도 계속됐다. ‘아니, 눈먼 사람이나 앉은뱅이는 고쳐주면서 왜 내 동생은 정상으로 못 고치는 거지?, 진짜 있긴 한 거야?’
결국 제풀에 지쳤다. 백일도 못 채웠을 거다. 계획을 수정했다. 백번 양보해 이번 생은 이대로 산다 치고 동생이랑 같이 천국에서 만날 계획을 세웠다. '아무 죄 없는 동생은 당연히 천국에 갈 테니, 나만 잘 가면 되겠군.' 내가 세운 계획을 확인하고자 전도사님께 물어봤다. “하나님을 믿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나요?” “그렇지~” 선생님은 내 속도 모르고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음, 근데 본인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럴 수 없으면요?” “글쎄다. 정확한 상황이 어떤지는 몰라도,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단다. 그래서 선교나 전도를 하는 것이고.” “아 그렇군요...” ‘역시 믿음이 중요하구나.’ 그래서였을까 그 전도사 아들 이름도 믿음이었다.
어렸을 때는, 동생을 나타내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설명하기도 어려워서 빙빙 돌려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전도사님도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이해하지 못 한 것일 수 있고, 나 역시 잘못 받아들였을 공산이 크다. 괜히 어쭙잖게 떠보다가 나는 꽤 이른 나이에 크나큰 종교적 회의에 빠졌다. ‘아무 죄도 없는 동생이 믿음이 없다고 천국에 못 간다는 게 말이 되나. 게다가 믿음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앤데...’ 헌금하는 척만 하고 헌금통에 빈손을 넣었다 빼는 애들도 다 가는 천국에 음언니가 못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모순덩어리인 종교라고 생각했다.
마치 어린이는 모두 순진한 양이고, 죄가 없는 것처럼 말하고는 결국 믿는 애들 안 믿는 애들 차별하는 행태에 어린 나는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또 그중에는 헌금 내지도 않고, 간식만 받아먹으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애들도 있는데, 그런 것도 구분 못 하는 하나님이 야속했다. 불만은 쌓여갔다. 몇 주 후, 나는 교회에서 무슨 이유인지 친구와 다툰 뒤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