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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pr 11. 2023

엄마의 서랍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때와 장소를 상관하지 않고 호기심이 많다. 심지어 매일 보는 집 또한 새롭다. 나 역시 그랬다. 서랍을 열어보고 어떤 도구가 있나 발견하고 물어보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무심코 부엌 싱크대 맨 밑 서랍을 열어보았다. 생소하게 생긴 곽이 보였다. 선명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에 절로 마음이 끌려 집어 들었다. 때마침 달려온 엄마가 약간 당황하는 눈치로 낚아챘다. 담배였다. 

 집안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직접 담배를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다. 뭔지는 몰랐지만, 왠지 좋아 보였다. 지금과는 달리 폐가 썩어가는 사진이나, 이가 부식된 사진도 없었고, 색감이나 디자인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나중에야 그때 일을 되새기면서 그 게 담배였던 것을 알았고, 왠지 좋아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전혀 좋지 않은 것이란 걸 알았다.

 심순덕 시인의 시 중에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있다. ‘엄마’는 당연히 뭐든지 참고 이겨내고 강인한 존재인 줄 알았던 화자가 나중에 우연히 엄마가 흐느끼는 것을 본 후에야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라고 깨닫는 내용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내용이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시대가 지나고 사람이 바뀌어도 엄마라는 대상에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일 테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힘들게 할 때면, 역으로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하나둘 꺼내어 보여준다. 음언니에 대한 것도 엄마가 잘 꺼내 보이지 않은 깊숙하고도 어두운 서랍 속 물건이었다. “10년간 정말 너무 힘들었어. 엄마 인생에서 암흑기였어” 언젠가 엄마가 힘들 때, 엄마 마음속 서랍에서 꺼낸 말을 들었다.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보지 않은 엄마가 왜 담배를 샀을까. 이유가 명백해지는 순간이었다. 항상 웃고, 씩씩했던 엄마다. “아무것도 못 하는 게 까불기는~” 가끔 음언니가 떼를 쓰거나 강짜를 부릴 때면 장애가 있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동생의 뼈를 때리는 블랙 유머를 던지기도 하면서 아무렇지 않았던 엄마다. 엄마는 못 하는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정말 그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도 잘했던 거다. 

 엄마도 모르게 내면의 어둡고 깊숙한 서랍이 열릴 때가 많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내 앞에서는 막무가내로 열리는 그 서랍을 애써 닫고, 아무도 모르게 그 서랍을 열었겠지. 그럴 때면 담배가 있던 집안의 서랍도 같이 열렸으리라. 

 엄마를 한 사람의 직장인도, 여자도, 누군가의 귀한 딸도 아닌 전지전능한 ‘엄마’로 여겼던 나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이전에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이었다. 자식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는 것을 보고, 경기를 일으켜 쓰러져 다치는 걸 볼 때마다 엄마의 가슴은 더 심하게 찢어지고 멍들었을 것이다.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기보다 강인하게 맞서던 엄마가 수소문 끝에 시도할 만한 것이 담배였으리라.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뒤로 담배를 본 적은 없다. 추측건대, 엄마는 시도만 하다가 어떻게 피우는 건지도 모르고, 포기했을 것이다. 몸에 해로운 것을 계속하지 못한 게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정말로 강해진 것이 슬프다. 난 이제야 엄마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는데, ‘척하는’ 엄마는 과거에 남고 없어졌다. 아니, 엄마의 아주 깊숙한 곳에 꼭꼭 숨어버렸다. 이제는 머리가 커서 그 사실을 알아도 숨어버린 예전의 엄마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여전히 미안한 게 참 많은 엄마다. 음언니가 저렇게 된 것도 엄마 탓, 중학교 무렵 내게 뇌종양이 생긴 것도 엄마 탓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성인이 된 이후에 내가 술주정을 하는 것도 본인 탓이라고 한다. 사실 지금 엄마 역시 어느 정도 여전히 ‘척’을 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속 서랍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차 있는지 열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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