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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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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pr 11. 2023

팔자소관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내 할머니는 손녀인 음언니를 그렇게 많이는 좋아하지 않아 보인다. 측은하고 안타까워하는 건 분명하지만, 동생 탓에 당신 딸이 힘든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 가족처럼 바로 옆에서 몸으로 하는 고생, 마음으로 하는 고생을 적나라하게 보지 못하는 게 다행이다. 명절에 내려가서 가만히 자거나 앉아있는 음언니를 보시면 “걷기라도 했시면...” 하면서 안타까워하신다. “지 엄마가 덜 힘들 텐데...”라는 말은 꼭 보태시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음언니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사실 뾰족한 방법도 없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할머니는 별수 없는 듯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엄마 이야기 한 보따리다.

 엄마는 곱게, 귀하게 자랐다고 한다. 엄마는 아들만 4명인 집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무리 아들이 대접받고 귀한 시절에도 아들만 생기면 딸을 낳으려고 하기도 했나 보다. 그렇게 아들만 넷인 집에 딸을 얻으려고 노력하다가 다섯 번째로 태어난 귀한 딸이 바로 엄마라고 한다. ‘그때도 아들만 있는 집에는 딸이 귀하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반세기가 지난 일들이 아직도 눈에 선한지 쉴 새 없이 말을 이어 나가신다. 

 “엄마가 얼마나 약았냐면, 다섯 살 때 빨래하는데, 자기 것만 쏙 빼서 집 안으로 가지고 가는 겨. 그래서 동네 어른이 ‘야야 너 그거 들고 어디 가니?’하고 물었는데, 엄마가 ‘이거 여기다 널면 색이 바래서 다른 데다 널어야 해요’라고 했다는구나 글쎄. 영특하지, 양달에 있시면은 색이 바랜다고 음달에다가 널겠다는 겨”

 할머니 이야기는 엄마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내촌 바닥에서 영특하기가 더할 나위 없었다는 것, 다른 시내로 대회를 나갔던 일부터 시시콜콜한 엄마 자랑들이 끝이 없었다. 오빠들에게 한 번도 욕을 듣지 않고 귀하게 컸고, 똑똑한 애들이 모인다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것. 당시 여자애까지 대학을 보내는 집은 많지 않았는데 대학까정 보냈다는 것. 대학교 시절에는 할아버지가 자전거로 태워주고 태워 왔다는 것 등등. 끝이 보이지 않는 엄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다리가 저려왔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속도 그럴까 싶다.

 시골에서 막내딸까지 대학을 보낸 것은 할머니 당신에겐 그 어떤 표창장보다 값지고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그것도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시절, 선생님을 한다는 교육대학교에 들어간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엄마는 위인 그 이상이었다. 끔찍이 귀한 딸이었으며, 당신들의 자부심이었다. 

 할머니는 장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시고는 누워있는 음언니를 보고는 한 말씀 하신다. “팔자소관이여” 할머니는 이 말을 하려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셨나 보다. ‘팔자소관.’ 당연하고 맞는 말이며 어디서든 들어맞는 진리다. 그래서인지 허무한 말이기도 하다. 

 결국 할머니의 장광설은 인간이 받아들이기 힘든 허무하고도 단순한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예방주사가 아닐까 싶다. 

 영특하게 태어나 아주 귀하고 곱게 자란 엄마다. 그렇다고 엄마 삶 전부가 원하는 대로 그랬던 대로 풀어지리란 법은 없다. 음언니는 엄마가 어려서 영특할 때도, 곱게 크고 있을 때도 이미 엄마에게 잉태된 팔자소관 중 일부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이든 잘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자꾸 그 말을 반복하신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미련을 못 버리는 것도 할머니의 ‘팔자소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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