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언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nd Apr 26. 2023

밥 먹고 크는 재주

  시골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딱히 말할 상대가 없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온종일 집에만 있으니 더 그렇다. 귀도 어두워 통화도 제대로 못 하시는 할머니의 세상의 창은 일주일에 두 번 오는 요양 보호사나 한 달에 두어 번 들르는 삼촌 그리고 엄마가 전부다. 

 엄마가 할머니 댁에 들를 때 기회가 되면 나도 같이 따라가곤 한다. 매번 하는 말씀은 똑같다. “다른 것보다 건강하고 월급 받고 하면 그걸로 된 겨”라는 말씀이고, 자석(식)들이 다 잘 되어서 참 고맙다는 말씀이다. 

 이번에는 그런 할머니 곁을 오래 지키고 있었더니 음언니 이야기까지 나왔다. “음언니는 (음언니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음언니라 한다) 잘 있니? 저번에 보니까 그래도 많이 컸던데.” 사실 지선이 키는 이미 예전에 다 컸고 옆으로 좀 찐 거고 그렇게 된 지도 오래인데, 볼 때마다 아기 같은 음언니가 생각보다 큰 것이 할머니에겐 인상 깊게 남은 것 같다. 남들 같으면 직장 생활하고 바쁘게 돌아다닐 나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집에만 있는 지선이다. 다른 사람하고도 일절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할머니와 비슷한 형편이다.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전처럼 활발히 일하시거나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 하신다. 또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총명하신데, 예전 생각을 하시며 “다 잊어버리고 먹는 거만 안 까먹었어” 하신다. 그것 또한 역시 먹고 자고 놀고 하는 음언니랑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가 음언니 이야기를 꺼내자 곧이어 말문이 막혔다. 음언니에게 생길 수 있는 별일은 대부분 우려스러운 게 많다 보니 별일이 없는 게 좋은 것이다. 말 그대로 전할 소식이 없는 무소식인 것이 희소식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할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다른 이야기인가 했는데, 아직 음언니 이야기였다. “그래도 밥 먹고 크는 재주가 용햐.”라고 한 말 씀 하시더니 특유의 돌림노래 혹은 추임새처럼 “밥 먹고 크는 재주가 용햐”를 반복하셨다. 

 작은 방에 메아리처럼 퍼지는 뜻밖의 칭찬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놀랐다. 할머니는 엄마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 음언니 이야기할 때면 음언니 때문에 엄마가 고생한다는 식으로 한탄하듯 말씀하셨다. 물론 누가 봐도 고생인 것은 맞아서 할 말도 없었다. 다만 할머니가 나이가 있는 터인지 그 안타까운 표정이 무표정과 비슷해 생생하지 않아 무신경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또 막상 집에서 음언니가 엄마, 또 우리 가족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걸 모르실 테니 그런 할머니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런 할머니는 엄마와 음언니를 가까이 들여다볼 기회도 없었기에 다른 사람처럼, 장애가 있는 평생 어린 자식을 키우는 측은한 엄마로 보였을 테다. 그러니 음언니가 아무리 손녀라도 예쁘게 만은 보이지 않았을 거다. 실상은 엄마 속은 내가 훨씬 많이 썩였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억지 칭찬이긴 하지만, 할머니의 음언니 칭찬은 그 자체로 신선했다. “지 엄마 손 잡고 걷기만 해도 좋을 텐데” 이런 말은 많이 들었으면 몰라도,  

 “밥 먹고 크는 재주가 용햐”라는 할머니의 말은 궁색한 칭찬이긴 하다. 하는 일 없이 가만히 밥 먹으면 옆으로라도 크는 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혹여 너무 할 말이 없어서 나온 것일까라고 본다면 그렇기에는 그동안 그런 궁색한 칭찬이라도 안 하셨기에 그것 또한 아닐 것 같다. 

 용하긴 하다. 세속적인 일은 전혀 안 하면서 집에서 밥 잘 먹고 귀여움받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지, 아무것도 못 하면서 표정은 가장 도도하게 짓고 세상 자존감 높은 얼굴과 행동을 보이는지, 세상에 하나뿐인 재주긴 하다. 또 얄밉지가 않고 매일 봐도 귀엽고 야무져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숨만 쉰다는 이유로. 또 아무 일도 안 하지만 아프지 않고 아무 일 없는 음언니의 하루는 너무 소중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밥 잘 먹고 보내주는 건 정말 감사한 것이며 별일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크는 진짜 재주다. 

 그렇기에 할머니의 칭찬은 궁색하다기보다 극사실적인 칭찬에 가깝다. 어쩌면 음언니의 상황과 음언니를 보는 부모님과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밥 먹고 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음언니가 해야 재주가 된다. <밥 먹고 크는 재주>     

 시골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딱히 말할 상대가 없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온종일 집에만 있으니 더 그렇다. 귀도 어두워 통화도 제대로 못 하시는 할머니의 세상의 창은 일주일에 두 번 오는 요양 보호사나 한 달에 두어 번 들르는 삼촌 그리고 엄마가 전부다. 

 엄마가 할머니 댁에 들를 때 기회가 되면 나도 같이 따라가곤 한다. 매번 하는 말씀은 똑같다. “다른 것보다 건강하고 월급 받고 하면 그걸로 된 겨”라는 말씀이고, 자석(식)들이 다 잘 되어서 참 고맙다는 말씀이다. 

 이번에는 그런 할머니 곁을 오래 지키고 있었더니 음언니 이야기까지 나왔다. “음언니는 (음언니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음언니라 한다) 잘 있니? 저번에 보니까 그래도 많이 컸던데.” 사실 지선이 키는 이미 예전에 다 컸고 옆으로 좀 찐 거고 그렇게 된 지도 오래인데, 볼 때마다 아기 같은 음언니가 생각보다 큰 것이 할머니에겐 인상 깊게 남은 것 같다. 남들 같으면 직장 생활하고 바쁘게 돌아다닐 나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집에만 있는 지선이다. 다른 사람하고도 일절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할머니와 비슷한 형편이다.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전처럼 활발히 일하시거나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 하신다. 또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총명하신데, 예전 생각을 하시며 “다 잊어버리고 먹는 거만 안 까먹었어” 하신다. 그것 또한 역시 먹고 자고 놀고 하는 음언니랑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가 음언니 이야기를 꺼내자 곧이어 말문이 막혔다. 음언니에게 생길 수 있는 별일은 대부분 우려스러운 게 많다 보니 별일이 없는 게 좋은 것이다. 말 그대로 전할 소식이 없는 무소식인 것이 희소식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할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다른 이야기인가 했는데, 아직 음언니 이야기였다. “그래도 밥 먹고 크는 재주가 용햐.”라고 한 말 씀 하시더니 특유의 돌림노래 혹은 추임새처럼 “밥 먹고 크는 재주가 용햐”를 반복하셨다. 

 작은 방에 메아리처럼 퍼지는 뜻밖의 칭찬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놀랐다. 할머니는 엄마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 음언니 이야기할 때면 음언니 때문에 엄마가 고생한다는 식으로 한탄하듯 말씀하셨다. 물론 누가 봐도 고생인 것은 맞아서 할 말도 없었다. 다만 할머니가 나이가 있는 터인지 그 안타까운 표정이 무표정과 비슷해 생생하지 않아 무신경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또 막상 집에서 음언니가 엄마, 또 우리 가족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걸 모르실 테니 그런 할머니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런 할머니는 엄마와 음언니를 가까이 들여다볼 기회도 없었기에 다른 사람처럼, 장애가 있는 평생 어린 자식을 키우는 측은한 엄마로 보였을 테다. 그러니 음언니가 아무리 손녀라도 예쁘게 만은 보이지 않았을 거다. 실상은 엄마 속은 내가 훨씬 많이 썩였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억지 칭찬이긴 하지만, 할머니의 음언니 칭찬은 그 자체로 신선했다. “지 엄마 손 잡고 걷기만 해도 좋을 텐데” 이런 말은 많이 들었으면 몰라도,  

 “밥 먹고 크는 재주가 용햐”라는 할머니의 말은 궁색한 칭찬이긴 하다. 하는 일 없이 가만히 밥 먹으면 옆으로라도 크는 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혹여 너무 할 말이 없어서 나온 것일까라고 본다면 그렇기에는 그동안 그런 궁색한 칭찬이라도 안 하셨기에 그것 또한 아닐 것 같다. 

 용하긴 하다. 세속적인 일은 전혀 안 하면서 집에서 밥 잘 먹고 귀여움받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지, 아무것도 못 하면서 표정은 가장 도도하게 짓고 세상 자존감 높은 얼굴과 행동을 보이는지, 세상에 하나뿐인 재주긴 하다. 또 얄밉지가 않고 매일 봐도 귀엽고 야무져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숨만 쉰다는 이유로. 또 아무 일도 안 하지만 아프지 않고 아무 일 없는 음언니의 하루는 너무 소중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밥 잘 먹고 보내주는 건 정말 감사한 것이며 별일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크는 진짜 재주다. 

 그렇기에 할머니의 칭찬은 궁색하다기보다 극사실적인 칭찬에 가깝다. 어쩌면 음언니의 상황과 음언니를 보는 부모님과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밥 먹고 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음언니가 해야 재주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석방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