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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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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pr 11. 2023

석방의 시간

 음언니 눈이 약간 빨개진 것 같다. 며칠 전 눈이 따끔해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는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집 안에만 있는 음언니가 밖에서 옮겨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혹시 내 알레르기가 옮아갔나?' 그렇다면 확실히 내 탓은 맞는데, 괜히 남 탓을 하고 싶다. 이게 다 ‘병균’ 탓이다.

 음언니는 태어나고 얼마 뒤에 열병을 앓았다. 그로 인해 뇌수막염을 앓았고, 혼수상태까지 갔다. 오른쪽을 거의 쓰지 못하게 된 이유일 수도 있다. 심각한 재앙이다. 음언니는 물론 나에게도.

 초등학교 때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병원에 잘 가지 않으려 한다. 자꾸 병원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엄마가 열이 받아서 말했다. "너 자꾸 병원 안 갈래? 예전에도 네가 동생 감기 옮겨서 아팠잖아!" 엄마가 정확히 어떤 말로, 어떤 어조로 말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확실히 그 내용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뇌리에 박혀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나 때문에 동생이 이렇게 불편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어릴 적 기억이란 건 대게 그렇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용은 확실히 기억나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마음의 가장 큰 조각들을 이루게 된다. 공 풀장에서 어떤 덩치 큰 애한테 깔려 난생처음 죽음 비슷한 것을 느낀 기억. 싸움을 하는데, 친구인 줄 알았던 애가 상대를 응원하던 것을 본 찰나의 기억. 그리고 그때 엄마가 했던 ‘동생이 나 때문에 아플 수 있다는 말.’   

 나중에 캐물었을 때, 엄마는 홧김에 말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정확히 모른다고. 나도 4살 때 내가 감기에 걸렸는지, 병원에 있는 동생에게 감기를 옮길만한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내게 가장 힘든 감정은 화나는 것도 아니고 억울한 것도 아닌, ‘미안함’이다. 진심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자기 자신을 괴롭게 한다. 동생에게 해를 끼쳤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곧 ‘미안함’이라는 감정으로 자리 잡게 됐다. 여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증거 불충분이라는 사유도 혹은 공소시효도 통하지 않는다. 병균이나 신과 같은 남 ‘탓’을 하는 이유기도 하다. 결국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것도 없다면 별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아무리 가능성일지라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지라도,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옅어지지 않는다. 가끔 옅어져 보일 때가 있긴 하다. 동생을 위해 뭐라도 해줄 때가 그렇다. 이를테면 가장 좋아하는 산책이다.

 음언니는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밥 먹고, 놀고, 사랑받는 것. 음언니의 일과다. 하루 종일 답답한 집에 있어서 그런지 산책을 좋아한다. 다른 말에는 시큰둥해도 "산책 가자~"라고 하는 말은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는다. 손을 덥석 잡고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음언니 전용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한다. 기껏해야 30분, 길어야 1시간 남짓. 하루 종일 갑갑한 집에 있던 음언니가 해방되는 시간이다. 동시에 나도 음언니의 쓰임을 받으면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기회만 있으면 산책을 가려고 한다. 화장실 바로 옆이 현관인데, 그걸 이용해 음언니는 화장실에 갔다가 바로 현관을 향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의지가 아주 강해서, 내가 거의 끌려가다시피 한다. 못 이기는 척 끌려가 준다. 음언니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내가 음언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도 이런 것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음언니가 마음 놓고 산책할 시간은 많지 않다. 우선 겨울에는 감기에 걸릴 수 있다. 산책이 금기되는 시기다. 음언니도 추워서 짜증을 내거니와 감기라도 걸리면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병원에도 가야 하고, 약도 먹여야 하고. 무엇보다 골골대는 음언니를 보는 게 괴롭다. 

 여름도 문제다. 음언니는 괜찮을지 몰라도, 너무 더워서 음언니의 차를 끄는 사람이 죽을 맛이다. 요즘 여름은 밤에도 더워서, 한여름에는 밤에도 산책하러 가지 못한다. 남은 건 늦봄에서, 가을 정도까지다. 이때는 어떻게든 음언니와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려고 한다. 별로 해줄 게 많지 않은 음언니에게 그나마 확실히 좋아하는 걸 해줄 수 있는 시간이다. 여름, 겨울이 길어지고 적당히 살기 좋은 계절은 짧아지는 요즘이다. 집 안에 갇혀 있는 음언니에겐 석방의 시간, 내게는 어떤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속죄의 시간도 덩달아 줄어든다.

 누구는 굳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사실 그렇다. 누구도 음언니가 이렇게 되길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다. 또 음언니가 불행하다거나 그녀의 삶 자체가 잘못되지도 않았다. 나보다 더 많이 웃고 행복해 보인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깊은 곳에까지 있는 내 마음이 설득되지는 않는다. 음언니가 먹지 못하는 맛있는 것을 먹거나, 가지 못하는 좋은 곳을 가게 될 때면, 그런 것들을 모르고 있을 음언니가 측은하게 느껴진다. 음언니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석방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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