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테니스를 친다. 테니스 말고는 별 취미가 없는 내게는 꽤 중요한 활동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주말 날씨에 민감한 편이다. 주중 내내 맑다가 주말에 비가 오면 짜증이 난다.
오늘도 분명 새벽에 잠깐 내리고 그친다고 했다. 근데 아침부터 주룩주룩 많이도 내리고 있다. 야외 운동이 취미인 사람들은 알 테다. 날씨 때문에 하던 운동을 못 하게 된 경우. 텅 비어버린 시간을. 그리고 그 텅 빈 시간은 왠지 무게감마저 느껴진다.
황망히 비 내리는 밖을 보던 아버지와 나를 구제해준 건 엄마였다. "카페 가자~ " 이웃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가자고 했다.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나가는 것도 좋았다. 나름 새로운 경험이었다. 새로운 커피도 마셔봤다. 그런대로 괜찮았던 테니스 없는 비 오는 주말 아침이었다.
간단한 이치를 깨쳤다. '날씨는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비 오는 날씨가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건 결국 나였다. 비 오는데 굳이 못 치게 된 테니스를 생각하며 울적해하는 건 어리석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영화를 보거나 막걸리에 파전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처럼 커피를 마셔도 좋고. 날씨는 죄가 없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거나 별로 알아내기도 싫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게 있다. 가까운 사람의 슬픔이 그렇다. 하지만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되고, 뭔가 속까지 차오르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잘 감내한다면 말이다. 음언니의 어린 시절이 그렇다.
음언니 본인이 제일 힘들었을 거다. 몇 번에 걸친 수술, 날마다 찔러대는 주삿바늘, 지금도 매일 먹고 있는 쓰디쓴 약까지. 고작 2달 정도 입원했던 나 역시 새벽마다 피 뽑는 것이 싫었다. 전신 마취를 받을 때는 ‘못 깨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모든 상황이 억울했고, 화가 났다. 고통을 이해하는 나도 그런데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상황을 겪은 음언니는 어땠을까.
그보다 더 아팠을 사람. 엄마다. 엄마는 음언니가 태어나고 꼬박 10년은 버텨내고 감내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9살 무렵 흡연자가 없던 우리 집에서 우연히 서랍 속에 들어있던 담배를 보았다. "이게 뭐야?" 신기한 마음에 묻자 엄마는 "아니. 그냥... 몰라"라고 얼버무렸다. 유난히 목이 약하고 지금도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엄마.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이 답답하고 무기력할 때 남들이 한다는 뭐라도 해보려는 게 아니었을까.
나는 나대로 와 닿지도 않는 주기도문을 외워가며 교회를 다니고 음언니의 '정상화'를 기원했다. 철저한 기복신앙이었다. 희망이 꺾일 무렵. 교회에서 친구와 한바탕 주먹다짐을 하게 됐고, 그 후로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날씨에 비유하자면 음언니를 만날 때 우리 가족은 태풍이 불고 흐린 날을 맞았다. 햇살은 구름 뒤로 숨어버리고, 잘 익은 과일도 별수 없이 떨어지는 날들. 한낮에도 어두운 날. 그런 날 우리 가족은 밖에 있었다. 예기치 못한 날씨에 봉변당한 것이다. 비를 잔뜩 맞아 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날은 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된다는 것을 알아갔다. 굳이 밖에 나가 스스로를 처량한 신세로 내몰지 않는 법을.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음언니가 '음-마'를 하면 신기해하고, 몸을 일으키면 좋아하고, 아장아장 걷기라도 하면 환호했다. 흐린 날에도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그러면서 점차 날이 개었다.
음언니는 여전하다. 낼 수 있는 소리는 '음' 정도가 다고, 앉아서 노는 게 전부다. 평범한 딸, 평범한 동생처럼 행동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지금 음언니는 어떤 딸, 동생보다 행복을 준다. 사랑스럽다. 무표정할 때도, 웃을 때도, 화낼 때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건, 매일매일 그런 날을 선사한다는 건 쉽지 않다.
변한 건 날씨도, 음언니도 아니었다. 그냥 지내다 보니 음언니와 함께하는 날씨에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