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꼴 다 봐”
할머니가 부리토를 드시고는 신기한 듯 손에 든 부리토 조각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씀하셨다.
엄마와 나는 종종 혼자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찾곤 한다. 할머니 댁에 가서 옹기종기 모여 하룻밤 자는 손자치고는 나이가 꽤 있는 편인 나는 단순히 효심이나 의무감에 가는 건 아니다. 멍하니 있거나 맥락 없는 할머니 말을 듣거나 새로운 음식을 드셔보고는 신기해하는 할머니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기 때문이다.
29년생인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 전쟁과 한강의 기적까지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다. 아쉬운 건 급격한 발전과 신문물의 유입에 따른 혜택이나 즐길 거리는 못 누렸다는 것이다. 삼촌 네 명에 엄마까지 오남매를 부족함 없이 키우느라 정작 할머니 자신의 부족함은 잊고 사셨다.
오남매가 도시로 떠나고 할아버지는 다른 세상으로 떠난 그 자리에 할머니는 혼자 남았다. 이제는 그 흔한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 여행도 제대로 가지 못하시고, 앉은 자리에서 배달 앱로 각종 요리를 즐길 수도 있는 것도 못 누리셨다.
한 번은 피자를 처음 드시고 서는 추석 때 온 삼촌 집에서 종일 그 피자가 어땠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95세인 할머니는 또 사위인 아버지가 칠순에 보내주신 설악산 여행에 대해 매번 이야기한다.
휴게소에서 국밥을 사서 가도 맛있게 드시고, 인터넷에서 저렴한 김치를 사서 가도 “간이 참 잘 됐다”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엄마에게 얘 이건 누가 만들었니?”라고 물으시며 어쩜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는지 신기해한다.
처음에는 할머니에게 미안하고 그런 할머니가 안쓰럽기도 했다. 나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피자나 햄버거를 질리도록 먹어왔고, 패밀리 레스토랑도 다 가봤고, 이제는 기분 낸답시고 비싼 호텔 뷔페도 가고 오마카세도 먹는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는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냉동 부리토를 신통하다는 듯 바라보며 드시는 걸 보니 왠지 송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삼촌이 오면 요구르트를 줄 생각에 요양 보호사가 주는 요구르트를 먹지 않고 그대로 두시는 할머니. 시급 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번답시고 뙤약볕에 앉아 잔디 뽑는 일도마다 않고,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 자식들 콩 줄 생각에 굽은 허리를 이끌고 콩 농사를 짓는 할머니. 얼기설기 기운 바지를 입으시면서도 그 옛날 엄마에게는 자주 새 옷을 사입히셨던 할머니다.
더 좋은 걸 먹고 더 편안히 지내도 이렇게 편한 세상 신기하고 고마울 것은 하나 없고, 할머니보다 불평은 훨씬 더 많은 내가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자식들 다 건강하고 걱정 없으니 만족혀” 할머니가 동네에 대한 배경지식도, 할머니 지인도 잘 모르는 내게 이런저런 맥락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만족하다’고 마치 삶의 총평처럼 되뇌신다.
전에는 그냥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할머니는 정말 그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마다 후회는 없고 진심으로 감격하신다는 것을. 자식과 손주를 볼 때면 항상 “아가 밥 먹어야지” 하시는 할머니, 지독하게 아끼셔도 지나가는 이 재워주고 도움 필요한 친척들에 손 내미신 할머니가 실은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부러운 거였다.
비행기 타고 이리저리 다녀도, 산해진미를 쉽게 먹고 다니고, 온갖 구경과 체험을 할 수 있어도 할머니만큼 행복하고 감사해할 수 있을까.
초롱초롱 호기심 가득한 할머니 눈이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