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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Jan 21. 2024

가족 과정 (어느 가족)

영화 속 '가족' 돋보기

 좀도둑질을 일삼는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바람난 여자의 아들 내외 집에 찾아가 돈을 받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와 같이 사는 그 집의 큰딸

 아이와 오순도순 살고 싶은 욕망에 어린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엄마  

 집에 홀로 있다가 그런 엄마에게 이끌려 진짜 부모와 헤어져 같이 살게 된 막내딸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이들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영화에서는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서로 ‘엄마’나 ‘딸’과 같은 가족의 호칭을 부르지 않는다. 통상적인 가족과는 다른 이들의 관계를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영화 속 인물들을 떠올려보면 개인이 아닌, 여섯 식구의 ‘가족 관계도’가 떠오른다. 

 그 관계도는 인물관계도처럼 그 관계도의 끝에 있는 각 인물에 주목되는 건 아니다. 그들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가족이라는 커다란 덩어리에서 모든 사건이 시작하고 일단락된다.  

 이들이 모인 가정은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고 돌아오는 곳이며 신체를 이완하고 감정을 내비치고 엉킨 마음을 풀고 가시 매듭지어 다른 하루를 준비하는 곳이다.


 그곳에선 할머니가 손녀의 발 온도를 느끼며 그 하루가 어땠는지를 짐작한다. 

 그곳에선 엄마와 딸이 각자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그곳에선 아버지가 아들을 끌어안고 파도를 탄다. 

 모두가 모여 국수를 먹는 그곳에선 ‘호로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린다.    


 영화는 가족이나 가정이란 위 같은 조건만 갖춘다면 하나의 형태가 아니며, 어떤 특정한 태도나 가치를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라 말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가족은 모범적이지 않다. 영화 원제목부터 좀도둑 가족(만비키 가족)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도둑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죽은 할머니를 집에 묻고는 연금을 찾아 쓴다. 연금을 부당하게 받는 건 분명 잘못된 일임에도 엄마는 “나쁜 일은 아니다”라며 말하고 아버지 역시 “아직 누군가에게 팔리지 않은 물건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라며 도둑질을 정당화한다. 어느 부모가 아이들에게 범법 행위를 정당화하며 게다가 권장하겠는가. 

 그런가 하면 어느 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소리 지르며 싸운다. 아직 가족이, 부모가 세상이 전부나 다름없는 아이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전쟁 같은 상황일 텐데 어느 부모가 아이에게 전쟁을 일으키는가. 또 어느 부모가 아이를 때리고 방임하고 상처를 주겠는가. 

 “정말 사랑하고 자식을 생각한다면, 모범이 될 만한 행동을 하고 엄격하게 가르치고, 필요할 때는 체벌도 해야 한다.” 어느 부모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편 진짜 부모에게서 아이를 데려온 어느 가짜 엄마는 말한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사랑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꼭 끌어안는다.     


 영화는 또한 가족은 주어졌고 바꿀 수 없는 게 아닌, ‘과정’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팔리지 않은 물건은 누구의 것도 아닌 것처럼, 가족의 정을 못 느꼈다면, 그 부모에게서 태어났거나 같이 살고 있다고 해도 가족이 아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가족은 같이 식사도 하고 여행도 가는 등 시간을 보내며 개개인이 아닌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공유한다. 혈연이라는 어쩔 수 없고 불가사의한 게 아니라, 가족이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기억을 쌓아나가고 감정을 공유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가족의 과정에서 결론이나 끝은 없다. 가족의 과정은 과정으로서 존재할 뿐 완성은 없는 것이다. 불신, 이기심 등에서 난 균열에서 비롯한 가족의 해체를 그리며 모든 가족은 시작과 결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반복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단단히 뭉친 눈사람도 날이 풀리면 녹는 것처럼.

       

 아들을 두고 도망치려 했다는 죄책감에 아버지는 스스로 아저씨가 돌아가고

 그런 아저씨를 만나고 돌아가는 아들의 마음에 아저씨는 여전히 아버지로 남는다.   

 학대하는 진짜 부모에게 돌아간 막내딸은 가짜 엄마가 불러준 노래를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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