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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Jun 18. 2023

죽어도 좋은 삶 (타이타닉)

영화 속 인물 돋보기

 영화 ‘타이타닉’은 실제 있던 침몰 사고를 배경으로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잭은 오늘만 사는 ‘탕아’로 로즈는 사랑하진 않지만, 몰락한 집안을 위해 부유한 가문과 약혼한 ‘비운의 여성’이다. 잭은 로즈를 보자마자 관심이 생기지만, 비단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은 아니다. 로즈 그녀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내리려 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단지 그녀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넘어 로즈의 삶이 혹은 로즈를 수호하는 신의 모습이다. 

 이 때문에 타이타닉은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잭은 로즈에게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잭은 로즈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그녀가 현재를 살 수 있도록 그녀가 정말 원하는 것을 묻고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러면서 내키지 않는 자리보다는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파티에 같이 가고, 가식적인 사랑보다는 마음이 끌리는 사랑을 나눈다.  

 무고한 잭이 모함당하며 시련을 겪는 것도 인간이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를 의심하고 박해받는 신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 잭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뿐 그런 인간들을 미워하지 않고 품위를 지킨다. 오히려 거친 말을 입에 담고 야비한 짓을 하는 건 부유한 사람들이다.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은 무한하다. 신이 인간을 있게 했다는 전제 자체에서 이미 신은 인간에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부모가 자식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조건 없이 사랑하듯 인간을 있게 한 신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인간을 창조한 신이 아니라 삶 자체를 말하는 것이어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인간이 계속 살아가길 원한다. 인간이 그 끈을 놓아버리면 그 인간에 속한 운명과 삶 역시 끝나게 될 테니 운명은 인간의 편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는 행복과 기쁨을 느끼길 바란다. 인간이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신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하다거나 사랑하는 연인이 옆에만 있어도 기쁘다거나,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만 해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다. 이렇듯 인간 안에는 누구나 신의 사랑 혹은 자연이 준 삶의 추동이 있어 삶을 긍정하고 살아가려는 힘이 있다. 그런 삶의 의지는 꼭 돈이나 명예가 있어야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잭이 제시하는 삶의 동력은 자신의 삶을 미래에 두지 말고 현재를 살라는 것이다. 삶의 동력인 행복을 오지 않은 미래로 미루는 것이 삶의 태도가 되면 미래가 현재가 되더라도 또다시 행복은 미래로 미뤄지고 결국 현재 삶의 동력을 잃어가게 된다. 물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허가 남는다거나 당장 내일 멸망해도 똑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삶의 동력이 아닌 언젠가 허물어질 수 있는 약한 동기고 자신을 속이는 거짓 동력이다. 잭은 당장 죽어도 좋을 것들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순수한 삶의 동력을 말한다.  

 영화는 잭이 아무리 “현재를 살아라”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를 받아들이는 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몫이며 자신을 아끼는 신만큼 그 자신도 신과 운명을 믿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칼의 측근은 잭의 주머니에 보석을 넣어놓고 그가 보석을 훔쳤다고 모함해 타이타닉 하층부 선실에 가둔다. 로즈는 잠시 잭을 의심하지만, 잭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물이 차오르는 하층부에 들어가 잭을 구하는 장면에서 신 또는 그 운명이 아무리 인간을 사랑해도 인간 역시 그 사랑을 믿으며 그를 구해야 비로소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신, 그리고 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못 할 것이 없다. 다만 신의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 그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 구원하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로즈는 자신의 운명인 잭을 믿었고 그를 구해냈고 잭은 로즈가 죽지 않도록 격려하고 지켜주며 그녀가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했다. 

 로즈는 신과 삶의 현신이었던 잭이 전한 뜻대로 오롯이 현재를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배가 부유한 약혼자가 넣어둔 값비싼 보석을 가지고 있으면서 마지막에 바다에 빠뜨린다. 보석이나 돈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진 못한다. 결국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먹을 것이나 입을 것, 놀 것 등 서비스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의미만 지닐 뿐이다. 미래에 있을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유예된 행복을 나타낸다. 침몰한 타이타닉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로즈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그녀가 유예되고 도구화된 행복을 상징하는 보석을 망설임 없이 던져 버리는 것에서 그녀가 마주한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것이 보여진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온 잭은 삶의 여한이 없다. 지금 자신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이다. 그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을 미루면서 혹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삶의 즐거움을 미룬다. 그것은 지금 삶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이런 삶을 끊임없이 이어가고픈 바람과는 다르다. 정작 삶의 순간들에서 행복을 느껴 영원히 삶이 계속되길 바라는 사람들은 죽음 역시 겸허히 받아들인다. 죽음이 가장 두려운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행복은 적극적으로 찾거나 즐기려고 하지 않은 채 막연히 미래로 즐거움을 미루는 게으른 자들이다.

 그 반대로 항상 현재를 즐기며 살아온 잭은 남은 삶이 아쉽지 않다. 다만 자신이 사랑한 로즈 역시 다른 것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 바람대로 자신은 죽어도 로즈가 남은 삶을 지금 당장 죽어도 후회 없이 살도록 이끈다. 잭이 하는 일은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다. 그림에 조예가 깊은 로즈는 그런 잭의 재능을 알아본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이 아니라 인물의 ‘지금’을 포착해 그 순간 반짝이는 순간을 그려낸다. 

 잭이라는 인물로 나타난 신은 ‘현재를 살아라’라고 한다. 흥청망청 오늘만 살자는 말이 아니다. 인간인 이상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해야겠지만 그러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역시 현재에 깨어있고 충분히 즐기며 감사하라는 태도에 대해 말한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은 흔히 계획한 모든 것을 다 했을 때 쓰인다. 하지만 진정한 몰입과 그와 관련한 만족감은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무한게임’에서 나온다. 끝을 정해 놓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몰입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한 죽음은 여한이 남을 만큼 현재에 충실한 삶의 과정에서 온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특별한 경험을 하거나 미뤄뒀던 하고 싶은 일 또는 미뤄둔 사랑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미뤄둔 안부를 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자체로 신이거나 삶 그 자체인 잭은 말한다. “당장 삶이 끝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처럼 늘 지내던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죽어도 좋은 삶’을 살라”고. 

 극중에서뿐 아니라 실제로 구명선에 탄 승객들을 구조한 배는 카르파티아호(CARPATHIA)다. 배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일 뿐이지만 왜인지 ‘현재를 살라’는 라틴어 carpe diem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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