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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Jan 31. 2024

“꽈배기?”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버스 시간이 좀 남았는데, 마침 앞에 꽈배기 가게가 보였다. 가게 진열대에 수북이 쌓여있는 꽈배기를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들어가 꽈배기 6개와 팥도너츠 3개를 샀다. 

 9시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꽈배기가 든 봉투를 식탁에 올려놓으니, 아버지가 식탁 쪽을 흘끗하고 쳐다봤다. 아버지와 데면데면한 사이라 그런지 몰라도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가령 ‘오늘 하루는 어땠으며 회식 때 뭘 먹었고, 버스를 기다리다 꽈배기를 사 왔고,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에 관한 말이다. 

 그 과정을 뒤로하고 멋쩍게 바로 “꽈배기 좀 드실래요?”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선 다른 생각들이 스쳤다. ‘아버지가 밤에 뭘 먹는 거나 단것도 안 좋아하시는데, 뭐 그런 걸 사 왔냐고 할 거 같은데...’하며 괜한 어색함에 헛말이 나왔다고 자책했다.      


 “꽈배기?”     


 아버지는 비스듬히 누운 채로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듯한 답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난 어느새 꽈배기 하나와 도너츠 하나를 데우고 있었다. 분명 정확한 답은 아니었지만 “꽈배기?”라는 어감에 반가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어감은 내가 평소 반갑지만, 괜히 부끄러워서 못 이기는 척할 때 하는 말투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 게 아버지 얼굴엔 마치 주문을 해놓고 기다렸던 것과 같은 표정도 스쳤다. 그 표정도 내가 만족스럽지만, 너무 티 내기 싫지만 좋아서 티가 나는 표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꽈배기 가게에 들어간 게, 마치 아버지가 텔레파시를 보낸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께 꽈배기를 주고 바로 방에 들어갔지만, 아버지가 반가워한 만큼 나도 기분이 좋았다. 

 꽈배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갑자기 꽈배기를 산 이유는 뭐였을까.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얼마 전 시장에 가면서 엄마는 아버지에게 “시장 가는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었다. 평소 나와 비슷하게(내가 아버지와 비슷한 거지만)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꽈배기나 좀 사와”라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났다. 

 아버지가 꽈배기를 주문한 것도, 텔레파시를 보낸 것도 아녔지만, 어쩌면 같은 공간에 살고 아버지의 말을 듣고, 언젠가 꽈배기를 맛있게 먹는 걸 본 그 시절부터 이미 들어간 주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꽈배기?” 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아버지의 말에 기쁨을 느낀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 거다. 

 아버지와 난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이는 아니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 대화가 끊임없이 통하는 연인 그와는 다른 사이다. 대화도 잘 없고 말도 잘 안 통하지만 굳이 말이 필요가 없는 사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아버지의 표정, 말투. 어느새 내가 하는 표정이자 말투가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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