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하려고 열어놓은 거지”
엄마가 내 방 옷장이 열린 걸 보고선 말한다.
“네... 뭐...”
실은 그냥 닫는 걸 까먹은 거다. 까먹었다기보다 아예 생각도 못 했다. 옷장은 열려있어도 다니는 데 걸린다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열어 둔 거라기보다 아예 닫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게 맞다. 이번에도 열린 지 닫혀있는지도 모르다가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알았다.
‘몇십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엄마는 날 그렇게 모를 수 있나?’ 의아했다. 줄곧 내 방을 보고는 “옷 정리 좀 하고 안 입는 옷도 버리고 그래”라며 내 방을 드나들던 엄마는 내 방 옷장이 그때마다 계속 열려있는 걸 봤을 것이다. ‘그럼, 그때마다 일부러 열어뒀다고 생각한 건가’
분명 내 의도는 아니었는데, 의도가 생겼다. 그것도 좋은 의도가. 의도치 않은, 별 의미가 없는 행동에 엄마가 의미를 부여한 거다.
지레짐작해서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좋은 의도를 나쁘게 오해한다거나, 사실 관계를 틀리게 파악하거나 하면 그렇다.
하지만 이번 같은 지레짐작은 얼마든지 해도 좋을 것 같다. 이해하기 힘든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다 뜻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억울한 일에 대해, 그 억울함을 가져온 세상에 대해 ‘다 그럴만하니 그렇겠지.’라고 여기는 태도다.
그런 엄마와 반대로 난 그동안 사람을, 세상을 바라보며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많이 던졌던 것 같다. 정말 부조리해서 바꿔야 하는 법이나 제도에 대한 필요한 물음은 아니었다. 단지 조그만 손해에도 이해를 못 했고, 사소한 불운에도 분하게 여겼다.
누구나 엄마처럼 내 행동과 생각을 봐주진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선한 의도와 생각들을 의심하고 나쁜 식으로 지레짐작할 거다. 내 행동과 생각을 좋은 의도로 생각해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을 넘어 불가능한 걸 꿈꾸는 것에 가깝다.
엄마의 말처럼 내가 다른 사람과 세상을 그렇게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건 가능하다. 그건 마음에 달렸기에.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세상은 꽤 좋은 세상이 될 건, 지레짐작해도 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