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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Feb 07. 2024

“그거 고장났는데”

 배송비를 내지 않으려고, 다이어트 도시락을 2개 시켰다. 회사에 가져가 먹으려 했는데, 막상 점심시간만 되면 배가 너무 고파 ‘이러려고 일하고 돈벌고 그러나’ 하는 섭섭한 생각이 들어 매번 실패하고 밖에서 맛있는 밥을 사 먹곤 했다. 그러다 보니 몇 주 동안이나 도시락이 회사 냉동고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오늘 점심엔 나가기도 귀찮고 마침 사무실에 같이 먹을 사람도 딱히 없기도 해서 그런지 도시락 먹을 마음이 들었다.

 도시락을 데우러 전자레인지가 있는 층으로 갔다. 누가 도시락을 데우고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나와 있는 시간을 흘끗 보니 아직 데우려면 몇 분 남았다. 바로 밑에 전자레인지가 하나 더 있어서 그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려고 문을 열었다. 


 “그거 고장났는데”     

 먼저와 도시락을 데우고 있던 그가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그곳엔 그 사람과 나밖에 없었으니, 내게 하는 말이 분명해서, “아 그래요?” 하고 다시 문을 닫았다. 그가 가져온 도시락이 원형으로 층층이 쌓는 전문적인 도시락이라 더 믿음이 간 건 아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목소리에 누구에게 분명히 말하는 것 같지도 않게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말투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을 그의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걸려 넘어졌다. 

 그는 회사에서 오가며 자주 본 매우 익숙한 얼굴이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있을 때도 목소리를 못 들었고 입을 열고 말하는 것 자체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입에서 나온 힘없이 빠져나온 나온 말이 꽤 묵직하게 다가왔으리라.  

 그는 옆에서 기다리는 날 흘끗 보고는 전자레인지에 나타나 있는 시간이 되기 전에 문을 열고 통에 살짝 손을 대보더니, ‘이만하면 됐다’는 표정을 짓고는 갔다. 그가 가고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우는데, 정말 전자레인지가 안 되는 걸까 궁금했다. 돌려보니 잘 돌아갔다. 그도 나도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짧았지만 그런 미묘하지만 싫지 않은 감흥은 없었을 거다. 사실은 틀렸을지라도 감출 수 없이 튀어나온 그 선의는 그 무엇보다 진짜였다. 

 그가 열어 놓고 간 전자레인지엔 뜨겁지는 않지만, 분명한 온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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