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by Anand


A가 하는 말들은 대단한 말들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대단한’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말하기 전에, 그게 하나의 ‘말’의 기능을 하는지도 불분명했다. 분명 말이긴 한데 구체적인 내용을 전한다기보다는 어떤 느낌과 모이지 않는 생각의 잔해, 또는 추측이 대부분이었다. A는 끊임없이 말했는데, 그에 앞서 하는 말이 있었다. 마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들은 대단한 말들, 또는 정리된 말이 아니야’라고 하는 듯 이 말로 말을 시작했다. ‘뭔가’


A는 스스로 낯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때의 A는 ‘뭔가’라는 말을 자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릴 적 경험과 자라온 이야기, 지금 마음, 고민을 이야기하는 데 ‘뭔가’라는 불분명한 내용을 말한다는 하는 필요하지 않았다.


A에게서 나오는 말에 “뭔가”가 자주 들린 건 A를 안 지 조금 지나서다. A와 내가 서로 정확한 말,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마쳤을 때쯤이었다. 그때쯤 A와 나는 흘러가는 것들과 다가오지 않을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한 때도 그때쯤부터였다. A는 강 부근을 거닐며 바람을 맞는 느낌을 이야기 했다. “뭔가 마음이 뚫리는 기분이에요.” A는 그 이유를 모르는 이야기를 할 때도 ‘뭔가’를 앞에 붙였다. “뭔가 물을 보면 뭔가 편안해져요. 바닷가 근처에서 살아서 그런가.”


돌이켜 보면 A가 “뭔가”라는 말을 많이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번은 나도 정리가 안 되는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고민이라고 내어놓기에도 무책임한 고민이었다.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죽고 사는 거창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A에게 내가 말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저마다 주어진 삶에는 어떤 의미나 목적이 없어 보이는데, 저마다 그걸 만들어가는 것 같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와 명예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 그 자체가 되거나 어떤 성취나 깨달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목적을 만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때때로 이유 없이 공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근데 심각한 정서적 우울함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하나 마나 한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때 유독 ‘뭔가’를 많이 들었던 이유는 보다시피 내 생각 자체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뿐 아니라 드는 생각 자체도 불분명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채로, 흘러가는 생각 그대로 말했다. 확실한 생각보다 불확실한 내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잡히지 않는 생각들을 말하려니, 이미 나로부터 나오는 말 자체가 ‘뭔가’에 해당했다. 그러니 그 말을 들은 A가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답해주는 말들은 ‘뭔가의 뭔가’의 영역이었다. A는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쯤 A에게서 나오는 ‘뭔가’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많이 들어주고 있던 거였다. A는 말했다. “뭔가 쓸데없는 생각이라기보다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아닐까요?”


‘뭔가’는 구체적이지 않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 혹은 느낌을 말한다. 뭔가라고 지칭은 할 수 있어도. 정작 가리키는 대상은 없는 모순적인 상태다. 그러니 ‘뭔가’라는 말은 정확한 소통을 위한 말의 기능과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라는 게 없는 모든 게 손에 잡힐 정도로 분명한 세상을 생각하면 뭔가 허전하다. 수시로 드는 불분명한 잡생각도 그 이유를 모르겠는 난 ‘뭔가’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에선 허전함을 넘어 텅 비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정확히 이유를 알 수 없는 흐릿한 것들이 어떨 땐 더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 느낌을 설명 아닌 설명하기엔 뭔가... ‘뭔가’만 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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