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셔(Sumsher) - 무게(Feat.Xydo)
"부모님 부부 싸움하시고 엄마 애들 얼굴 볼겸 아버지 밥 차려주기 싫음겸 저희 집 놀러오셔서 치맥 한잔 하는중입니다 ^^ 오늘은 엄마편들어드릴께요 죄송해요 아버지 ㅎ 인순이 노래 흘러나오는데 찔리네요 ㅎ"
나는 아버지 편인 적이 거의 없다. 이 분은 '오늘은'이라니. 정말 골고루 편을 들 줄 아는 현명한 스탠스를 취할 줄 아는 분이라 느꼈다. 나는 최근에야 아버지의 입장, 심정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됐는데... 어떤 소리가 계기가 됐다.
'삑, 삑' 또 그 소리였다. 요즘 들어 부쩍 몸무게에 민감해진 사람. 동생도. 엄마도 아닌, 아버지다. 아버지의 체중 고민은 남들과는 좀 다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가 아닌, 몸무게가 적게 나가 서다. 원래 그리 크지 않은 덩치인 아버지. 가뜩이나 요즘에는 있던 살마저 빠져나가는가 보다.
일종의 강박이 아닐까 한다. 때문에 한 번 꽂히면 반복한다. 몸무게를 재는 것도 그렇다. '삑, 삑' "음 한 500g 쪘네~" 어쩐지 만족하신 듯하다. '방금 식사하신 영향이 클 텐데...' 금 조금 이따가 화장실 다녀오시고 빠졌다고고 푸념하실 것이 눈에 선하다.
자꾸 들려오는 삑 소리가 거슬려서 나도 모르게 사색에 잠겼다. '도대체 왜 무게에 집착할까. 남들은 줄이고 싶어 안달하는데.' 나는 아버지와 체격, 체질이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의 마음을 얼추 알 수 있었다. 본능에 가깝다. 생의 몸부림인 것이다. '저 많고 높은 건물 중에 내 몸 뒤일 것은 하나 없네...'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똑같이 24시간, 하나의 목숨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누구는 기갈나게 살아제끼고, 누구는 좁은 방에서 웅크려야 하는가에 관한 모순. 비약하자면 몸무게는 그런 모순과 맥락을 같이 한다.
똑같은 지구에 사는데, 난 왜 더 넓은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는가! 차도 큰 차나 공기오염 많이 시키는 차는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근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무게가 더 많이 나가 공간을 많이 차지하면 그대로 그만인 거지, 별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비슷하게 체격이 왜소해서 그런지, 그런 불평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좀 더 살이 찌고, 체격을 키우려고 했던 적도 있다. 보기 좋으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몸이 커져서 많이 먹고, 많이 싸고, 유지비가 많이 드는 그런 사람은 어떨까 하는 동경 비슷한 게 있었다. '아버지도 그런 건가 보다.'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더구나 육체적인 '무게'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시곤 했다.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어릴 적 내게 강조한 말이다. 어지간히 기억에 남는 말 아니면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꽤나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모르긴 몰라도 역시 아버지의 '무게'에 대한 집착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무게란 '특별히 많은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동의하게 하는 힘'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어렸을 때 난 우유부단한 편이었다. 때문에 내가 거절을 해도 친구들이 그게 거절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내가 거절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탓이리라. 그런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가 한 번은 나를 불러 놓고(한 번 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말씀하신 거였다. 어릴 적 내가 생각해고 까불거리고 귀를 팔랑거리며 돌아다녔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많이 단호해지고 실제로 무게를 얻진 못해도, 어느 정도 '무게감'이란 것을 얻게 되었다. 사춘기를 겪으며 말수도 줄어들고, 헛소리하며 실실 댈 힘이 빠진 덕도 있다. 동시에 갈수록 '무게'를 잃어가는 아버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 말은 곧 진리였다. 특별히 종교도 없었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내가 딱히 아는 게 없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흰 도화지였고, 마음 놓고 그곳에 그림을 그렸다. 억지로 그린 건 아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허락 하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아버지에게 무엇이든 물어봤고, 대부분 답해주셨다. 심지어 중학교 때까진가는 별로 원하지 않았던 수학, 영어도 가르쳐 주셨다. 시간이 지나자, 아버지보다 내가 아는 것이 많은 부분이 생겼다. 아버지가 하는 말은 재방송처럼 들렸고, 흥미가 떨어졌다. 물어볼 것도 애써 쥐어짜 내야 됐다. 간혹 모르는 부분에 대해 말슴하시는 건 사실 내가 별로 알고 싶지도, 알아도 별 쓸모가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말은 맞장구 칠 필요도, 굳이 들을 필요도 없어졌다. 그렇게 아버지의 무게감은 줄어들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그 시점은 아버지가 몸무게가 빠지기 시작한 몇 년 전과 얼추 비슷하다. 누구나 아버지의 그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 소리가 분명 슬프다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자꾸만 들리는 그 소리가 씁쓸하게 거슬릴 뿐.
아버지의 무게가 가벼워진 건 내 탓도 있을 것 같다. 엄마, 가족에 대한 무게감, 세상에 대한 무게감을 떨어뜨린 건 그간 아버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선지 않을까. '말' 뿐 아니라 '편'을 들어주지 않은 것. 당분간은 아버지 '편'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노력을 해보려 한다. 이제 와서 애교를 부린다거나, 응원단처럼 겉으로 편들 자신은 없더라도.
-한 요리사 아드님 말씀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