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우리 지금 만나-리쌍(feat. 장기하)

by Anand

"대박 제 뒤에서 1시간동안 전화통화하던 여자 손님이 내리면서 지금 다왔으니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 하자며 내리시네요 ㅋ."



퇴근시간이었다. 아무리 주변이 시끄러워도 어떤 소리는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퇴근길 버스나 지하철 전화통화가 그렇다. 문자를 보낸 청취자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겠지만 한 시간 동안이나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쏠려있었을 것이다. 간간히 통화 내용을 듣다가 '좀 이따가 만나서 더 이야기하자'는 끝인사가 귀에 들어온 것이다. 언뜻 듣기에 황당한 말임엔 분명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청취자가 보낸 문자보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은 분에게 공감이 갔다. '만나야 한다'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 "소주 한 잔 하자"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하는 의미도 기약도 없는 인사말이다. 애초에 처음 인사를 할 때나 받을 때도 곧이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다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가끔 메신저로만 대화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문득 오래전에 만나고 메신저로 대화만 하고 있는 사람이 비현실 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정말 살아있는 것 맞나 하는. 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고 그 휴대전화로 가족이나 친구에게 태연히 연락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문자로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이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정말 내가 알던 ooo가 맞아?"라고 보낼 수도 없고.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의 존재에 대한 뜬금없는 의심 말고도, 자의식이 과잉 기도 한다. 상대가 어떤 몸짓과 표정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지 모르니, 디테일한 뉘앙스는 전적으로 받는 이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내용 자체는 파악한다 해도, 상대가 얼마나 열이 받은 상태인지, 나를 비꼬는 태도인지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내가 자존감이 낮은 시점에는 상대가 특별한 의도 없이 건네는 말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괜히 무시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지만, 그 내용은 온전히 '나'라는 필터를 거쳐서 오게 되는 것이다. 내용 파악을 위한 표정, 행동, 말투는 배제되고 내 상태가 그를 왜곡하는 것이다.


만나야 한다. 문자 속 손님이 1시간을 통화했든, 10시간을 통화했든 간은 중요하지 않다. 더 많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어쩌면 더 많은 오해가 쌓여, 만나서 풀어야 할 게 불어 났는지도 모른다.


-한 버스 손님 말씀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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