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순(내생에 최고의 순간)

이승환-화양연화

by Anand


"오늘 친정엄마가 김장 김치 해다주셨는데 무뚝뚝한 딸이라 잘먹을께요. 라고 건조한 한마디로 끝냈는데 애교도 좀 부릴껄 그랬나봐요^^;; 주변에 엄마 돌아가신 분들은 이럴 때 친정엄마 많이 그립다고 하는데 항상 감사하는 마음 표현하며 살아야겠어요. 이승환의 화양연화 신청해요"



청취자가 신청한 노래 제목 '화양연화'의 뜻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뜻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화양연화는 한참 지났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던, 모든 게 내 멋대로 이뤄지던 시절. 어린 시절이다.


얼마 전 아는 형의 가족을 봤다. 형은 갓 돌이 지난 남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자식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기분을 파악하고 원하는 것을 시시각각 들어주기 위해서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저 때는 저랬겠구나. 남부러울 게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눈치가 없어도 알아서 밥이 나오고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지던 마법의 시절.


전 회사에서 일할 때, 업무 외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배가 자기 아들이라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줄 때다. 아이를 좋아하는 편인 나지만, 어떤 반응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가 매우 불편했다. "아 귀여워" "어떻게, 어쩜 이렇게 잘 생겼어요?" 작가들이나 여자들은 공감 능력이 좋아서 그런지 반응을 잘해준 데 비해, 나는 아무리 쥐어짜도 그저 어색한 기계적 미소만 나올 뿐이었다. "진짜 귀엽네요..."


이번 회사에서는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둔 선배가 있다. 다행히 사진이나 영상을 막 보여주면서 반응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부담이 덜해졌다. 부담감이 덜해지니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도 저랬을까.'


약 30여 년 전, 그러니까 한 세대나 차이가 난다. 당시에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손쉽게 찍지 못할 때다. 그만큼 자녀를 표현할 수단도 없거니와 그런 문화도 아니었을 것이다. 강산이 3번 변하는 만큼 많은 게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마저 달랐을까.


몇백 년 전의 문학 작품이 아직 마음을 울리고, 음악이 사랑받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많이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무뚝뚝한 아버지고, 잘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며 또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외할머니다.


우리 외할머니의 자식 사랑은 맹목적인 면이 있다. 그럴 때면 본래 성격과는 다른 성격이 보인다. 단 십 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외할머니지만, 자식과 관계된 일에는 그렇지 못하다.


어머니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주영 이냐?, 할머니가 깍두기랑 김치 조금 했다. 외삼촌 편에 보낸다."

이어 넷째 외삼촌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주영이냐?, 뭐 어디 회사 다닌다면서? 그래 잘 다니고, 그나저나 너희 집 주소가 어떻게 되지?"

"네, 저희 집은..."


며칠 뒤 외삼촌이 깍두기와 김치 조금을 전해주셨다. 시골에 있는 밭을 대부분 처분해서, 그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더구나 엄마까지 5남매에 사이좋게 조금씩 나눠주었을 터이니 적은 양인 것이 당연했다. 엄마는 "기름값이며 외삼촌 수고에 비하면 그냥 사 먹는 게 났겠다."라며 농담을 했다. 가끔이지만 꾸준히 찾아가고, 유쾌하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말씀을 들어주는 엄마라도 뭔가 어색했나 보다.


어설프게나마 이해가 된다. 엄마가 대 놓고 웃지도 못하고, 불편하지도 못한 것이. 너무나도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 그 앞에 말문이 막혀서 아닐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을 것이고. 마치 표현을 하면 그 감사함이 딱 그 정도의 표현으로 굳어져 버릴 것 같은 기분.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은 거대한 사랑과 헌신 앞에 말문이 막힌다. 그러면서 오히려 감사한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결국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게 되면 그 마음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후회로 남을 뿐.


표현의 방식은 저마다 다양하다. 막 애교를 부릴 수도 있고, 편지로 진중하게 마음을 전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도 표현해야 한다. 대가 없이 최고의 순간을 선사한 그들에게.


-한 어머니 말씀 풀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