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 이문세 - 눈이올까요
"내일이 결혼 10주년입니다. 광역버스 뒷자리에 타고 블링한 핑크장미를 사려고 양재꽃시장 에 가려고요. 눈이 온다니 가야할까요" -시내버스 기사님-
버스기사님이다. 저녁 9시가 다 돼서 일을 끝낸 기사님이 다시 버스를 타고 타 지역으로 넘어가 꽃을 사러 가신다는 것이다. '눈이 온다니 가야 할까요?'라고 물은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눈이 오거나 말거나는 그가 꽃을 사고 말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다만 눈을 뚫고 갔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다. 어쩐지 보낸 기사인 마음은 눈이 좀 흩날리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꽃 같은 진심을 더해줄 꽃 주위 안개꽃처럼.
결과론적으로 보면 같은 일들이 많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종착지, 결과는 같아도 그로 향하는 길은 수도 없이 많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도. 그곳이 누구에게는 5분 거리고, 누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1시간을 걸려오는 곳이다. 초, 중, 고등학교를 털레털레 걸어서 다녔던 나는 학교 귀한 줄 몰랐다. 친구 역시 마찬가지로 귀한 줄 몰랐다. 학교에 가면 오두방정을 떨어도, 심한 장난을 쳐도 받아주는 친구들이 늘 있었다.
커가면서 그런 것 또한 축복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누구는 평범한 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었다. 또 누구는 타고난 환경 때문에 평범하게 또래 친구들과 교제를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걸 쉽게 누리면서, 아니 쉽게만 누렸기 때문에 감사함을 몰랐던 것이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빠르고 쉬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통해 느끼는 '벅참'을 알게 되었다.
"오빠 나 아파..."
스스로 생각해도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던 시절. 아는 동생이 아프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좋아하는 동생이었다. 12시가 다 된 시간에, 약국을 돌아 약과 병에든 따뜻한 레몬차를 사서 집 앞에서 전화를 했다. 하지만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방에 돌아왔다.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불편한 차림으로 뛰어다녀서 그런지 발 언저리가 좀 까져 있었다. 그날 밤 역시 눈이 조금 흩날렸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취업준비를 했을 때 마셨던 탈락의 고배. 어느 정도 실력을 키웠다고 생각한 뒤에도 계속해서 떨어졌다. 점차 탈락의 고배는 쓰다 못해 독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니 소정의 성과가 생기긴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교적 빠르게, 더 좋은 자리에 안착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부러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기쁨보다 내 기쁨이 더 클 것 같았다. 그제야 어떤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았다. 흩날리는 눈을 무릅쓰고 꽃을 사러가는 길을 걷는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기사님이 보내준 문자에서, 맨 마지막 구절이 너스레로 보일 수 있는 것 자체가 왠지 뿌듯했다. '저도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습니다'라고 답을 보내고 싶었다. 눈보라를 헤쳐나가는 기분.
-한 시내버스 기사님 말씀 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