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let it be
"체벌 말씀하시니 중학교 때 빗자루로 저희 때리시다가 흥분하셔서 더 쌔게 하시려다 부러진 빗자루 조각에 맞아서 코뼈 부러진 윤리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항상 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가만히 강물을 보고 있으면 원수가 시체가 떠내려오는 걸 볼 수 있다"라는 노자의 말이다. 속으로 되뇐다는 것은 잘 실천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나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게 발전적이고 긍정적으로 으쌰 으쌰 하는 것이면 그나마 좋은데, 그건 또 아니다. 단지 개인적인 분(憤)함을 못 견디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생각하라. 내 뜻에 반하는 사람을 만날 것이며, 이유 없이 내게 해코지하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같은 동호회 아저씨도 한 말씀해주셨다. "조금 손해보고 산다고 생각하고 살면 편하다."
쓸데없이 운명에 맞서려 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상태를 만들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요소는 개인의 기분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가 낳은 축복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황에 말려 내 기분을 더 상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가령 난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다 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이 늦게 될 때가 있다. 문제는 늦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으로 통학, 통근을 해왔다. 집에서 학교, 회사까지는 보통 1시간 반, 많게는 2시간까지 걸렸다. 때문에 늦으려 하면 이미 2시간 전부터 '늦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특히 잘하면 제시간에 도착할 것 같은 애매한 경우면 더욱 그렇다. 꽉 막힌 도로를 뚫어지게 쳐다봐도 변하는 건 없는데, 다른 건 하지도 못한다. 눈은 도로를 쳐다보고 차 엔진 소리에 귀를 쫑긋한다. 운전을 하는 기사님보다 더 예민하고 바쁘다. 여유로움과 대안 없는 분(憤) 함중 분함을 택하며 자유의지를 나쁜 쪽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건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힘을 빼는 것이 삶의 지혜 아닐까 싶다. 상황에 말려 흥분하는 바람에 매가 부러지도록 내리쳐 결국 자신이 다친 윤리 선생님. 문자 속 그 선생님처럼 나 자신에게 해를 입히고 있던 건 결국 나 자신이다. 누군가를 탓하고 상황을 탓해봤자 결국 화병으로 고생하는 건 나다. 그전에 화를 내고 말고 하는 것도 그 자신일 테고. 저마다 비슷한 세상을 살면서 다른 세상을 사는 이유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이 곧 최선의 덕이라는 노자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야근하시는 한 청취자 분 말씀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