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박효신, 이석훈, 서인국, 빅스 - 크리스마스니까
"또 다시 크리스마스네요 .거리엔 캐롤이 울리고 모두들 행복한 모습 인데, 저는 왜 이맘때만 되면 쓸쓸 할까요?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건 케익이예요. 크리스마스 가까이엔 할인 행사도 많고 , 빨강과 초록색으로 만들어진 예쁜 케익을 보면 참 마음이 따뜻해 져요. 어렸을적 저희집은 아빠가 사 들고 온 케익 에 촛불을 켜고 아기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 하며 각자의 새해소망을 기도 하곤 했어요. 그러나 이젠 제가 훌쩍 어른이 되어버려 아빠 없는 크리스마스가 올해로 다섯 번째 ㅠ 눈도 안내리고.. 미세먼지 때문인지 뿌옇고 흐린 하늘.. 사실 실감 안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 입니다... 언니~ 그래도 말인데요~~ 그래도 또 크리스마스 니까 !!! 성시경 박효신 서인국의 ‘크리스마스니까’ 들려주세요! 노래 듣고 크리스마스 임을 느껴 볼께요^^"
크리스마스다. 어렸을 땐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집 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어디 숨겨져 있을 선물을 찾아. 가장 좋았고 설레는 선물은 커튼 뒤에 숨겨져 있었던 당시 유행하던 구슬 동자 장난감이었다. 약간 실망스러웠던 건 옷장에 넣어져 있던 패딩 조끼였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쓸모없는 장난감보다 옷이 훨씬 좋은데, 분명 그때 당시엔 그랬다.
그렇게 설레던 크리스마스가 점점 별 거 아닌 날이 돼버렸다. 딱히 기억나는 날도 없다. 입시 준비를 할 땐 그러나 저러나 공부를 하는 날로, 취직 준비를 할 때는 그냥저냥 고민에 잠기는 날이었다. 원래부터 특정 '날'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기도 했던 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념일'이나 '특정한 날'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다. 크리스마스인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다. 기온이 딱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건 사고가 많아지는 날일 수도 있다.
다른 기념일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시간에 1년이라는 '순환'의 의미를 부여한 건 인간이다. 새해 첫날도 결국 다 같은 하루 중 하나일 뿐이다. 생일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독립적인 날인데, 그 날이 돌아온다는 것은 단지 인간이 부여한 의미다. 그저 기념하게 위해. 따지고 보면 크게 의미 없는 날들을 지정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문자를 봤을 땐, '왜 굳이 크리스마스임을 느끼려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지나가면 어때서. '어차피 각자가 사는 세상은 저마다 다른 하나인데, 남들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문자에서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 '더 살아가기 위해서'다. 자신에게만 빠져서 살아가다 보면 결국 그 감정에 빠져버린다. 우울한 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자기 자신에 빠지는 건 좋지 않다. 세계와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잃러 버릴 수도 있다.
예전보다 경조사에 갈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괴리감이 들곤 한다. 그 괴리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령 내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결혼식에 가면 축복, 긍정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내 코가 석자'인지라 적응이 잘 안되다가도, 어느새 결혼식 주인공, 축복해주는 하객의 시선으로 그 분위기를 즐기게 된다. 기분이 환기가 되는 것이다.
상갓집은 그 반대다. 기쁜 일이 있던가 하더라도 고인과 가족의 시선, 입장에 어느 정도 동조하게 되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반대로 가족들은 조문을 온 일반 사람들의 조금은 대수롭지 않은 시선,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빌릴 것이다. 내 아버지, 형제가 아닌, '한 인간이 세상을 떠났구나.'하고. 마음은 무겁지만 덤덤하게. 슬프더라도, 타인이 사는 세계를 빌려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슬픔의 농도를 맞추는 것이다.
'다른 세계를 빌려 자신의 세계를 빠져나오는 것' 각종 기념일, 특정 날 역시 그와 비슷한 기능을 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와의 기념일은 상대의 세계를,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기념일은 그들의 시선, 세계를 말이다. 그냥 살아가면 모두 다 똑같은 하루. 아니면 누군가 곁에 없어 쓸쓸한 날들을 환기해줄 수도 있다. 그렇게 자신을 가두고 있는 늪에서 잠깐씩 숨을 쉬러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한 청취자 말씀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