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Across The Universe
"매일 2살 딸이랑 듣다가 6살 아들이 방학을 해서 같이들어요 아들이 아는 팝이 하나있는데 don't worry be happy~부탁해요^^"
"만약에 틀어주신다면 우영아. 방학잘보내 한마디도 부탁합니다 ㅋㅋㅋ"
"고마워요!!! 아들이 좋아서 난리가 났어요~~~ ♥ 오늘도 좋은하루보내세요 !"
'큰 일이다' 막 잠에 들 무렵 잠이 다시 달아났다. 불현듯 찾아온 어떤 생각 때문이다. '셔츠!' 바로 다음 날 오전에 면접이 있다. 정장을 입고 가야 한다. 마지막 남은 셔츠에 대한 기억은 지난 주말 있었던 결혼식에 참석 한 뒤 그냥 방구석 어디에 처박아 둔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그 주변에 그전에 입었던 다른 셔츠도 널브러져 있겠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셔츠를 빨고 다린 기억을 어떻게든 끄집어 내려했다. 아무리 쥐어짜도 없던 기억은 나오진 않았다.
불을 켰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귀찮지만 셔츠를 빨고 다음 날 덜 마른 셔츠를 다리든가 해야 한다. 이제 와서 게으른 나를 자책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밝아진 방. 옷걸이에는 잘 다려진 셔츠 2장이 걸려 있었다. '휴, 다행이다' 엄마일 것이다. 덕분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큰 일어난 것처럼 걱정한 나 자신이 우스웠다. '그럼 그렇지'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거나, 크고 작은 무엇을 해내는 것. 그것이 있기까지 내가 잘해서, 잘나서라고 할 수 있을까. 또 그렇다고 친다면 그건 어디까지일까.
6살 먹은 한 청취자 분의 아들과 바로 얼마 전 내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인 청취자는 아들이 아는 팝송 한 곡을 신청했다. 뒤이어 아들의 이름도 불러주기를 청했다. 아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 훈훈한 장면을 떠올리며 웬일인지 뜨끔했다. '그 아들은 익숙한 노래가 나온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에게 고마워할까?' 6살 꼬마 친구는 그저 자기가 아는 신나는 음악이 나와서 즐거웠을 테다. 더구나 라디오에서 자기 이름까지 흘러나오는 것도 신기했을 것이고.
엄마가 생색을 내려하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설명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단지 '기분이 좋다' 정도이지 않을까. 그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나 역시 관리하지 않은 셔츠가 말끔하게 생겨도 별 감흥이 없는데 말이다. 물론 그 아드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 자신은 그랬다. 나를 둘러싼 긍정적인 것들이 당연했다. 내가 잘할 수 있었던 건 단지 내가 잘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날 아침. 매 번 집 안 어딘 가에 선물이 숨겨져 있었다. 어린 내가 한 해를 울지 않고 착하게 잘 살았기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성적을 잘 받은 일이 있었다. 역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학습지며, 학원을 알아본 엄마. 마트에서 뭘 사줄지, 카드는 어떻게 쓸지 고민했던 아버지는 내가 누린 영광의 순간에 없었다.
성인이 된 후, 어느 정도 독립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되었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다음 날 입을 셔츠 하나도 관리하지 못했다. 셔츠 하나뿐이 아니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 살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라도 완전히 스스로 삶을 영위한다 하자. 그때의 삶 역시 계속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의 나'는 긍정적이었던 어릴 적 환경, 그것을 발판으로 한 일련의 크고 작은 성취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온전히 '내 것'인 걸까.
언젠가 금은방에 간 적이 있다. 시계줄을 맞추려 간 건데, 기다리는 동안 진열장에서 빛나는 보석을 구경했다. 보석에 일절 관심이 없었지만,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다 됐습니다" 사장님 말에 정신이 들었다. 집중하고 있던 보석을 잔뜩 클로즈업하고 있던 내 눈이라는 렌즈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시 진열장이 보였고 보석을 비추는 조명이 보였다.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의 무수한 면들도 보였다.
저 보석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처음부터 그렇게 빛이 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테다. 여느 돌덩이와 비슷한 딱딱한 물체. 누군가 그를 발견해 흙먼지를 털어내고, 정교하게 깎았을 것이다. 필요하면 색을 입히고, 조명을 비추고, 보석이 빛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맞췄을 것이다.
운명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체의 노력이 일생을 결정한다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노력, 독립된 행동의 원천은 또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력이라 믿었던 것들 역시 실은 내가 모르는 나를 지지하는 세상의 조화 덕은 아닐까. '말끔히 다려진 셔츠',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배후가 있는 것처럼.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의 반복되는 한 구절이 떠오른다.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그 어떤 것에는 '나 자신(even myself)'도 포함되지 않을까. '나 자신도 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온전히 내 삶의 주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조금은 마음 편하게, 잘난척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이 주어진대로 겸허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보석이 잘 팔리든, 잘 안 팔리든 보석 그 자체 탓만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엄마 청취자께서 보낸 일련의 말씀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