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로부터

봄여름가을겨울-bravo my life

by Anand

"오지 말래도 오더니 가지말라니 또 한 해가 어김없이 가네요 ‥참 세월은 계절은 알아서 잘하는 말 잘 듣는 학생 같아요~ 어쨌든 이말하구싶어요 지난일년두 좋은선곡에 힘쓰신 여러분 수고하셨구 내년에두 염치없지만 계속 행복주시길바라봅니다 홧팅!!♡♡♡ "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표현이다. 오지 말래도 오고, 가지 말래도 가는 시간. 미래에서 다가오는 시간은 왠지 달갑지 않다. 인간에게 있어 지금 주어진 순간을 온전히 느낀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는 사이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미래에서 온 시간에 밀려 없어진다. 인간이 슬픈 이유 중 하나는 그런 한계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게 자각하니 올 한 해, 나는 무엇을 온전히 느끼고 생각하고 집중했는지 돌아보게 됐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아님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든 어떤 것을 온전히 바라 보고 심취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야말로 세월에 끌려가듯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한다.


세월이 말 잘 듣는 학생이라면, 인간은 학생 등 뒤에 매달린 가방 정도일 것이다. 언제 매달렸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가방. 그런 가방의 눈으로는 딱 반쪽, 학생의 뒤편만 볼 수 있다. 앞쪽은 세월이란 학생의 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저 바로 현재부터 과거까지 흘러가는 풍경만 바라볼 수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끊임없이 바뀌는 풍경만 따라가다가 뭔가 파악될 때쯤 또다시 바뀐다.


여름에 적응될 때 즈음 계절이 바뀌고, 한 사람을 이해할 때 즈음엔 그 사람은 떠나간다. 대강 세상을 알 때 즈음, 세상을 뜨게 되는 건 아닌지 불현듯 두려워진다.


나라는 책가방은 또 가방 안 쪽을 보지 못한다. 밖에만 바라보고 이렇다 저렇다 할 뿐. 정작 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말 잘 듣는 학생이 내 안에 무엇을 넣어놨을까.' 생각할 뿐이다. 간혹 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볼 기회가 생긴다. 가방 문이 열려 다른 사람이 무엇이 들었는지 말해줄 때, 혹은 다른 가방들이랑 대화를 해볼 때 알게 된다. 가방은 가방 속에 들어있는 것만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직접 내 안에 뭐가 들었나 알 수는 없다. 가방의 설움이다.


그렇게 매달려 다니는 것은 가방의 숙명이다. 다른 가방들처럼 나도 매달려 다닌다. 그러다 가끔 학생이 가방을 잠시 벗어두는 순간이 오곤 한다. 속절없이 지나갔던 시간들이 멈추고, 그렇게 멈춘 채로 어떤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다. 슬픈 건 그게 어떤 지점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계절이나 한 해가 가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 보다, 나와 나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집중하며 살아갈 때 그게 어떤 순간인지 알게 될 것도 같다.


-한 피아노 선생님 말씀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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