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변해가네
"저왔어요^^ 며칠 아침마다 고등학교에 글씨수업 하러 학교에 가던 길들이 생각나는 아침이예요. 학생이었던 적이 아직도 선명한데 지금은 참 그때와 다른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삶의 어느 지점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
그렇다. 분명히 몇 년 사이에도 비슷한 관계, 비슷한 사건을 겪어도 내 상태에 따라 그것들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라는 가증스럽고 모순적인 인간이 행태만 봐도 그렇다. 학창 시절에는 쓰지 않던 관형어를 쓰게 되었다. 남발하진 않아도, 그런 말이 떠오르게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몇 가지 것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1. '선생님도 사람이다'
학생에서 선생님으로 변함에 따라 같은 배움의 공간은 확연히 달라진다. "차별하는 게 제일 싫어"라고 했던 학생이 선생님이 되어 차별을 한다. 노력은 하지만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착하고 말 잘 듣는 성실한 학생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정확히 내 경우다.
초등, 중학생을 가르치는 공부방에서 활동할 때였다. 선생님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장난을 걸어왔다. 평소 장난을 좋아하던 나였어서 그날도 나와 장난을 치고 싶었던 것 같다. 같이 장난을 치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학생이 바나나 껍질을 내게 던졌다. 아무 생각 없이 나도 똑같이 던졌는데, 하필 그 학생의 얼굴에 맞았다. "아이고 어쩌나, 미안해"라고 했지만 맞는 순간 내 얼굴엔 희열의 표정이 스쳤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두고두고 같이 활동했던 선생님들의 놀림감이 됐고, 나 스스로도 매우 후회하고 있는 부분이다.
선생님이 되기 위한 정식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자발적인 활동으로 했었던 것이었고, 그만큼 나도 어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지 느낀 게 있었다. 역할과 업무로 옳아 매여도 사람은 다 비슷하다는 것. 선생님이라고 무한한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 어릴 적 그 선생님들은 학교를 놀이터처럼 뛰어다녔던 내가 얼마나 꼴사납고 미웠을까. 말썽을 피우고 끊임없이 까불어도 웃음을 지으며 나를 대해주던 선생님들에게 새삼 죄스런 마음이 든다. 사람 좋은 웃음 뒤에 남몰래 어금니를 물고 계셨던 것을 아닐지.
2. '나의 풍부한 경험과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너에게 잔소리를 사하노라'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어른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아직 많은 나이를 먹게 되진 않았지만 그런 말이 툭 튀어나을 때가 있다. 한 번은 아는 동생에게 싫은 소리, 잔소리를 실컷 한 후에 이런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은 적이 있다. 그 말을 했을 때도 놀랐지만 꽤 자연스러워서 또 한 번 놀랐다. 나중에야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해봤다. 그게 정말 그랬는지. 물론 그 동생을 위한 마음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 동생을 온전히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 보단 나를 위해서였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사는 그 친구가 스스로 답답해서, 내가 못 견딜 지경이었다.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내가 참을 수 없어서 말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다 나를 위해서 한 말'이었다.
3. '정말 작아졌다'
'정말 작아졌다' 이 말도 있다. TV에 연예인이 나와 옛날 자신이 살던 동네에 가서 하는 말. '자기가 컸으면 얼마나 컸다고...' 그때 역시 삐딱하게 생각했다. 근데 그 '작다'는 말이 꼭 실제 크기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님을 알았다.
토익 시험을 보러 갔다. 어쩌다 보니 다니던 중학교로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다. 슬프게도 중학교 이후로 키도, 몸무게도 그대로인 나다. 그럼에도 복도며, 교실, 심지어 학교 정문부터 건물에 이르는 길까지 모두 작아 보였다. '아 이게 허세 같은 건 아니었구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 몸이 커진 것도 아니고, 다른 낯선 중학교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나는 초, 중, 고를 걸어서 다녔다. 모두 15분 내외로. 성인이 될 때까지 버스 한 번 제대로 혼 자 탄 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동네에 최적화된, 익숙한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타난 변화는 나로서는 상당히 큰 축에 속했다. 2시간 거리를 통학도 해보고 집에 나와 살기도 했다.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반년 남짓 생활하기도 했다. 물리적인 변화도 변화인데, 심리적 변화도 컸다.
출신, 나이가 다른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그때마다 수많은 내가 되었다. 각각의 상대가 기대하는, 그들과 맺는 관계에 적합한 내가 돼야 했다. 학생, 선생님, 여러 타입의 친구, 취준생, 재취업 준비생 등등 그런 와중에 내가 알던 그 중학교를 찾은 것이다.
다른 많은 변수가 많은 일들, 관계들은 '커'보인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의 심적 크기다. 반대로 '작다'는 것은 온전히 통제하기 쉬움을 말한다. 마치 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는 열쇠고리처럼. 내게 중학교가 작게 느껴진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이워지지 않던 일들, 나만 좋아한다고 해결될 관계가 아니었던 시간들. 이것들은 너무 커서 보고 있기만 해도, 생각하기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내가 찾은 그 장소에는 이제는 변할리 없는 그때 그 추억과, 그것의 주인인 나만 존재할 뿐이었다. '예전 그곳이 작아 보인다'라는 말은 허세나 잘난 척이 아닌 조금은 측은한 말이었음을 이때가 돼서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서는 인간 문명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가공할 속도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감당하지 못할 속도에 취해 정상적인 사고나, 판단을 하지 못한다. 속도의 엑스터시에 취해있을 뿐. 어떤 변화에 현기증을 느끼는 나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뒤이어 이해하는 것에서도 그런 멀미 감을 느낀다. 거기에는 뒤늦은 후회나, 좌절감 등도 뒤섞여 있다.
-한 글씨 선생님 말씀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