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복자(感福自)

Frank Sinatra - My Way

by Anand

"저는 새해 인사를 복 많이 만드세요 라고 합니다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기쁨이 바로 큰 복 아닌가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읽은 책 중, 지금까지 내게 울림을 주는 책이다. 그때 받은 감명 덕분인지, 실존주의는 내 안의 굵직한 사고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복 많이 받아라'라는 말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이 문자를 보기 전만 하더라도 크게 생각지 못한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 이미 수십 번도 넘게 했다. 듣고 보니 약간은 무책임한 말 같이 느껴졌다. 정확히 내가 복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 복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복 주는 사람은 따로 있고 생색은 엄한 사람들이 다 낸다. 더 큰 문제는 결국 이 말이 상대의 복을 진정으로 기원해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에 불씨를 지폈다. '세속적 성공은 신의 은총에 대한 증명이다'라는 선언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세속적 금욕주의를 실천했다. 직업적 성공을 이루려 노력했고, 그것이 곧 종교적 성취라고 믿었다. 동양에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이 있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조조를 풀어줄 것을 알면서도 관우를 보낸 제갈량. 그가 말한 수인사 대천명(修人事待天命),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그렇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 이는 성공 여부나 하늘의 뜻은 우선 열심히 일하거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노력이 깃든 행동이 먼저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은 나중이라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출처도 없는 복을 받으라는 것은, 노력도 하지 않고 신의 은총을 바라라고 하는 것과 같다. 복을 받기 위한 전제를 무시한 것이다.


분명 인간은 그 스스로 한계가 있다. 때문에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스스로 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지 결과적인 측면만으로 가 아니라 자신만의 복을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감복력(感福力)', 스스로 복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저 바라기만 하는 목표는 실제로 노력을 전제로 한 목표와 확연히 다르기 마련이다. 가령 단순히 "얼마가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답할 것이다. 그 금액은 복권 당첨에 버금가는 금액 혹은 스스로 기준에서 허황될 만한 금액을 원할 것이다. 반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얼마를 벌고 싶어?"라는 물음에는 한동안 고민을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에서 청사진을 그려보며,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허황된 금액을 말할 때 허탈한, 아니면 씁쓸하기도 한 웃음과는 밀도가 다를 테다.


혹여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든가, 결과적으로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노력의 과정이 건강하고 점진적이었다고 한다면 의미가 있다. 과정에서의 복은 인간이 만들어 낸 척도에서 벗어나 있다. 그 자신만이 감지할 수 있다. $(달러)와 같은 측정값은 아니더라도 '뿌듯함', '값을 매길 수 없는', '카타르시스' 등의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정확한 느낌은 그 본인만이 알 것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과 맥을 같이 한다.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불안이 인간 스스로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다. 동시에 그는 인간이 불안을 온전히 통제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 와중에 최선을 다해 산다고 하면 그 과정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명시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복(福)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허황된 복을 바라는 것은 인간 존재의 능력, 나아가 신의 은총도 거부하는 것이 된다. 나아가 삶의 과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에서 삶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반응하고, 되지도 않은 사색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로서는 이 분의 말이 누구나 불편함 없이 쓰는 관형어에 대해 거는 신선한 시비(是非)로 느껴졌다. 남은 새해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로 은근히 바꿔 말해봐야겠다.


-새해 인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제시해 주신 한 청취자 말씀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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