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한 걸음 더
"바둥바둥 조급하게만 지나왔던 지난날들 생각해보니 몸은 제자리에 마음만은 저만치에 달려가고 있었어요. 급한마음에 조금은 여유롭게 조금은 천천히 가려고합니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며 산다는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하다는것인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다. 아무리 몸이 힘들고 바빠도 꼭 지키려고 하는 그런 규칙. 마음의 안정과 정서적 평화를 주는 행동들이다. 빌 게이츠가 저녁 설거지만큼은 꼭 하려고 했던 것처럼,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미사나 예배와 같은 종교 의례에 참석하는 것처럼, 내게 있어 의례이면서 마음의 평화를 주는 행동이 있다. '청소'다.
처음에 ‘청소’라는 행위는 다분히 실용적인 의무적인 일로 다가왔다.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 했다. 진공청소기로 요란하고 빠르게 해치우고 허겁지겁 물걸레로 닦았다. ‘청소’의 의미가 달라진 건 진공청소기 대신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사용했던 건 엄마가 늦게까지 자고 있어 시끄럽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여름에는 청소기에 열이 나니까 진공청소기를 쓰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익숙해졌다. 진공청소기에서 나는 소음을 들으면서 빨리 해야겠다는 강박이 드는 환경보다는, 천천히 비질을 하는 게 훨씬 좋았다. 이때부터였다. 청소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청소는 일주일을 되돌아보고 남은 다가오는 일주일을 준비하는 필수적인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청소를 했다. 나를 집어삼킨 욕정과 탐욕에 대해, 내가 이겨내지 못한 감정적 상황들에 대해. 그러다 엄마 방에서 작고 반짝이는 것을 쓸어 담게 되었다. 얼핏 보면 불필요한 쓰레기 같아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귀중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귀걸이 뒤에 다는 것이었다.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만약 전처럼 진공청소기를 사용했더라면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서는 쓰레기봉투로 들어갔겠지.
청소기를 쓰지 않으면서 또 하나 달라진 것은 ‘버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잘 보이지 않는 먼지, 머리카락들을 쓸어 담을 뿐이었다. 한꺼번에 쓰레기통에 버릴 땐, 먼지와 머리카락 등이 뒤엉킨 괴 생명체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빗자루로 쓸어 담는 과정은 괴롭다. 허리도 아프고 먼지 등을 한데 모아 쓰레받기에 조심조심 담아야 한다. 또 어느 정도 차면 쓰레기통에 버리러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내 방엔 종이가 많고, 엄마 방엔 머리카락이 많고, 거실엔 먼지가 많고... 비로소 어떤 곳에서 어떤 것들이 발생했는지 알게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빠르고 편리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은 좋다. 문제는 인간의 내면, 혹은 정서적 속도가 이를 따라갈 수 있느냐다. 수많은 사람을 빠르게 만나며 정작 귀중한 사람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진심 어린 참회보다 편리한 종교의식으로 자신에게 묻은 더러움이 어떤 형태인지도 모른 사이, 똑같은 죄를 씻고 묻히고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청소를 빨리 끝내버리면 그 이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청소 과정에서 접할 수 있는 사색과 생각의 과정이 없어진다. 오늘 발견한 귀걸이 뒤에 다는 것처럼, 더러움의 모양처럼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그냥 잊혀 간다. 천천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한 청취자 말씀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