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Apr 06. 2020

#4. 클릭! 한 번이면 모든 게 끝

담보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담보된 현실의 달콤함을 억제해야 하는가?

 손 가락을 움직여 컴퓨터를 켰다. 파란 화면 왼쪽으로 여러 가지 가지런히 쌓여있다. 익숙한 듯 한 아이콘을 누른다. 그리고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에 버금가는 진지함으로 게임을 즐긴다. 한 시간쯤 게임을 즐기고 모아 온 아이템 전부를 게임 속 창고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는 값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원화를 달러로 바꾸듯 게임머니를 원화로 환산해보는 작업이다. 게임 아이템 및 캐릭터는 거래소를 통해 현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단순히 계산해도 수십만 원가량 되는 큰 금액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돈을 받으면 평소에 해보고 싶던 게임 CD를 사고, 약간의 현질을 한다면?'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나의 죄책감을 누그려 뜨렸고, 결과적으로 다른 게임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또한, 애지중지 키워온 게임 속 캐릭터가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몇 년간 잘 키운 애완동물을 안락사시키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비인간적이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미래는...? 


 모두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이 시기를 놓치면 나는 수능이라는 최종 전장에 나가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질 게 뻔했다. 100번 양보한다고 해도 내가 그 당시 꿈꾸던 광고 기획자나 회사의 CEO(Cheif Excutive Officer)가 될 순 없다. 컵라면이나 씹어대면서 가상 세계에 빠져지내는 CEO를 따를 직원은 없을 게다. 현실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이 강하게 충돌했다. 


 그 날 나는 두통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머리가 아팠는데, 그때부터 인생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행복의 총량이 같다면 지금 좀 즐긴다 하더라도 인생 전체 적으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나는 사골 육수를 내듯 뇌리를 계속 우려 댔다. 미래의 담보되지 않은 행복, 수능을 잘 본다고 인생이 핀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그런 위험한 배팅을 위해 현재의 확실한 행복(나는 게임을 할 때 정말 행복했다.)을 포기해야 하는 내 처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아직 겪어보지 않았으므로 인해 부모님과 사회의 방식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건 넌센스였다. 

 

 고민은 1시간 넘게 지속되었고, 최종적으로 미래의 나에게 배팅해보자는 결론이 섰다. 왜냐하면 중학교 때 어정쩡하게 했던 공부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공부가 아까웠다. 차라리 펑펑 놀아버렸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역시 환경이 선택의 답을 만들어 버린걸까? 생각했다.  CEO가 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코너 우드먼이 쓴 책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에서 "CEO란 직업은 가장 섹시한 직업이다!" 라는 문구가 있다. CEO는 자신이 분석 및 고민하여 내린 결정으로 세상을 바꾸고 잘못될 시 모든 책임 또한 자신이 져아한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스스로 고독하게 분석하고 때로는 인간관계에서 초래하는 왁자지껄한 상황들 가운데에서도 이성을 잡고 정보를 끌어모아야 한다. 이렇게 섹시한 직업이 또 있을까?


 결론이 선 나는 게임 아이템을 평소 나를 따르던 온라인 회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무상으로!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나는 비장하게 말했다. "내 인생에 큰 배팅을 해보려고 한다.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그들 모두는 아이템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호의적으로 나의 앞길을 축복해줬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바로 아이디 삭제다. 상당한 레벨이 눈 앞에 번쩍였다. 운영자와 게임의 방향에 대해 논의까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통행권을 거머쥔 캐릭터다. 삭제된다면 이보다 더 한 낭비는 없어 보였다. 다시 마음을 잡고 삭제를 클릭했다. "삭제하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네'를 클릭했다, 그런데 젠장! 이번에는 "지금 삭제하면 다시는 복구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뜨는 것이다. 2차 고민의 시작이었다. 2차 고민은 약 30분가량 지속되었다. 


 나는 더 이상 마우스에 손을 가져갈 수 없었다. 실수로 클릭해버린다면 큰 낭패였다. 온갖 속삭임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중에 가장 합리적인 변명은 굳이 캐릭터 자체를 삭제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학교에 가서 다시 즐길 수도 있을 텐데... 

 

 기나긴 터널을 끝낸 장본인은 바로 엄마였다. 장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아직도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냐며 내 방으로 성큼성큼 다가왔고, 나는 무방비 상태로 삭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악!"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내가 전 인류 멸종을 부르는 핵 무기 버튼을 누른것 마냥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다시 게임 화면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캐릭터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날의 슬픔은 꽤 오래갔던 것 같다.


 이렇게 인생에서 큰 결정은 어처구니없는 계기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 마음속에서 삭제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에 엄마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삭제 버튼을 눌렀을 테지만, 갑작스러운 상황변화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사실 그때의 결정이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그 이후로 떨어졌던 성적을 다잡으며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선택의 순간을 경험한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선택일 수 있지만, 당사자는 일생일대의 사건일 수도 있다. 리더는 늘 옳은 선택을 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한 선택을 옳게 만드는 사람이다. 나는 게임을 끊을 수도, 계속할 수도 있었지만 어떠한 선택을 하던지 내 꿈을 향해 다가가고 이뤄내면 그만이다. 조금 더 편한 길을 걷기 위해 게임을 끊었을 뿐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맞는 결정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 삶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든다면 깊게 고심하고 과감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은 응당 본인이 져야 한다. 


 물론 행복에 대한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나 또한 아직도 그 답을 찾는 중이다. 눈 앞에 뻔히 보이는 행복을 잠시 묶어둔 채 경험해보지 않고, 확실하지 않은 미래의 행복을 좇아가는 건 어쩌면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이러한 선택의 순간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괴롭힐 것이며, 그때마다 우리는 깊숙한 자아에게 물어야 한다. 혹시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죽기 전에 이것만큼은 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지를! 만약 있다면?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의 벽을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하지만, 생각보다 역동적이고 상상할 수 없이 값질 수도 있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