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행이면 필유아사라
게임 다음으로 학창 시절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꼬리표 중 하나는 태권도다. 사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태권도를 배울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몇 대 쥐어 박히다 보니 오기가 생겨서, 나쁜 아이들을 때려주기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햇수로 7년을 넘겨 버렸고, 4단을 땄고, 사범자격까지 취득했다.
그리고 인생의 방향을 견고하게 잡아준 운동이 바로 태권도다. 단순히 운동을 통한 체력 증진과 정신력 강화 따위의 틀에 박힌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인생의 큰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다. 도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 뒷 이야기에 나오겠지만 정말로 도인을 만났다.
우리 태권도장에는 다른 도장과 다른 특이한 점이 3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3년 정도 수련 끝에 검은 띠를 따면, 그 뒤로 모든 운동은 무료다. 나는 이 혜택을 제대로 누렸는데, 첫 3년 이후로 4년간 공짜로 태권도를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상술이라고 생각했었다. 보험도 장기 가입자에게 혜택을 몰아주지만 막상 장기 가입자는 많지 않으니까!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관장님을 찾아가 물었다.
"관장님, 왜 3년이 지나면 전액 무료로 운영하세요?" (우리 태권도에 3년 넘게 다닌 수련생은 꽤 많았다.)
관장님은 씩 웃으며 말했다.
"무언가를 성실하고 꾸준하게 3년을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란다. 그 지루하고 힘든 과정을 견디면 세상은 혜택을 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단다. 인생이 그런거지."
두 번째 특이한 점은 새벽반이 있다는 점이다. 학원 등으로 야간 시간에 도장에 올 수 없는 학생을 위해 태권도 9단이자 국기원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시던 관장님이 직접 새벽에 우리를 가르쳤다. 나는 학원 공부 때문에 저녁 타임에 다니기 어려워지자 새벽반을 다녔다. 3년 정도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태권도에 가서 수련을 하고 학교로 향했다. 여름에는 참을만했지만, 겨울만 되면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위에는 두꺼운 점퍼로 앙칼진 바람을 막을 수 있었지만 흰 도복 바지는 매서운 겨울 한기에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떨어댔다. 달도 뜨지 않는 밤이면 나는 총총걸음으로 두 눈을 밝히며 태권도장으로 향했다.
이 새벽에 누가 돌아다니겠냐? 만은 나는 매일 우유 배달하는 아주머니와 신문을 돌리는 30대 중반 정도의 아저씨와 인사했다. 가끔은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이 이 시간에도 운동을 하냐며 격려해주었다. 지금도 알람 소리에 맞춰 눈 비비며 일어나 맞이하던 몽롱한 새벽 공기의 청량감을 잊을 수 없다.
마지막은 한문을 통한 예의 범절 습득이다. 태권도 시작 전 20분은 늘 한문공부를 했다. 주로 '논어'와 '사서삼경' 등 중국 고전 작품 속 한자를 익히며 그 뜻을 알려주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토의했다. 처음에는 국영수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굳이 한자 및 윤리까지 배워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자아가 형성되던 이 중요한 시기에 옛 성현들의 가르침은 지금도 내 삶 곳곳에 흐른다. 어느 날 관장님은 한자 수업 중 한 학생을 크게 꾸짖었다. 그 학생은 힘이 센 친구였는데 반 친구를 괴롭혔다고 들었다.
"태권도를 배우는 이유가 뭐지? 힘이 세져서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고? 아니. 약자를 보호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야. 수련하는 사람은 불의에 맞서 부당함을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오로지 나 자신과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만 힘을 사용해야 하지."
실컷 얻어맞고 시작한 태권도, 나쁜 아이들을 혼내주고 내 힘을 과시하려고 시작한 운동이었는데, 모든 게 어그러져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맞은 기억은 있어도 누군가를 때린 기억이 없다. 조금 억울했다. 살면서 몇 번 기회는 있었지만 그때마다 관장님의 말씀이 귓가에 여름철 매미처럼 윙윙 울어대서 때릴 수 없었다.
관장님은 평생을 운영하던 태권도 장을 오랜 기간 같이 일하던 사범님에게 넘겼다. 소문에는 제 값을 받지 않고 그냥 주었다고 들었다. 그리고는 지리산으로 들어가셨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가끔 태권도장 근처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회색 도포? 비슷한 걸 입고 계셨다. 머리는 하얗게 새었는데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고 반짝였다. 수염이 턱 밑까지 자라 있어서 그런지 도인이 따로 없었다. 도인의 슬하에서 운동을 배울 수 있어서,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인간의 도리를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7년 간 꾸준히 무언가를 배웠다는 사실은 내가 태권도 4단을 딴 것보다 더 값진 보물이었다. 어떤 일을 하던지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처리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고, 내 인생의 깊은 뿌리가 되었다. 내가 자랑할 수 있는 무기는 성실함 밖에 없는 듯하다. 나는 뛰어난 신체 능력이 있거나 비상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 묵묵하게 내 할 일을 하고있다.
나의 이런 강점은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듯하다. 어릴 적부터 사람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정갈하게 씻은 후 8시 정도에 직장에 나가 저녁 11시가 되어 들어오는 삶을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주 6일간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아버지는 성실하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그 행동 자체가 성실함 자체였고, 그 모습이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버무려진 양념 같은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몸 깊숙이 맛있게 베어 들었다. 지금도 나는 내 능력에 힘이 부칠 때면 아버지가 보여주신 지속적인 꾸준함으로 더디지만 결국에는 극복해 나가고 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이다.' 즉,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중 한 사람은 내 스승이다. 우리의 삶에는 정말 많은 스승들이 거쳐간다. 모든 스승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제자의 폭풍 성장(내적, 외적)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된다고도 믿는다. 꼭 도인의 기운을 풍길 필요는 없다. 어머니의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밝은 기운을 배울 수 있고, 동생의 늘 깨끗하게 방을 유지하고 큰 욕심부리지 않으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그 정신도 배울만 했다. 심지어 나쁜 행동으로부터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사치를 부리는 사람을 보면서 저러지 말아야 한다고 배우면 그 사람도 나의 스승이 된다.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스승이나 귀인이 없어서 외롭다는 건 핑계다. 모든 건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