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어령은 우리에게 88 서울올림픽으로 더욱 유명해진 사람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준비에 참여하여
잠실종합운동장에 한 소년이 나타나 정적 속에 또르르 굴림쇠를 굴리는 장면을 기획했다
지금도 그 장면은 많은 이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을 겪은 후 경제 부흥을 이루며 바쁘게 달려온 우리나라가
평화 이미지를 부각하고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가 내포되었다
그가 투병 중 생의 종착역을 앞에 두고 단상을 적었는데 그 글이 책으로 나왔다
2019년부터 2022년 2월 영면에 들기 한 달 전까지 쓴 글이다
그래서 소제목이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다
글자를 쓸 힘이 남아있지 않아 삐뚤삐뚤한 글씨체를 담은 원고 사진이
활자들과 나란히 배치되어 작가의 고된 노력이 눈에 보인다
서문에서 그는 말한다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다.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다.
품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의 그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 온 88년, 병상에 누워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한참 생각했다. '디지로그' '생명자본'에 이은 그것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
광폭한 사회, 배금주의가 주리를 틀어대는 세상, 쩍쩍 갈라지는 메마른 땅에
단비 같은 눈물 한 방울 흘려줄 배려와 공감이 절실히 요구된다
자신의 감정이 복받쳐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다른 이도 함께 잘 살아내기를 바라며 흘리는 눈물은
희망의 씨앗이자 사랑의 씨앗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딸을 먼저 보내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거듭 되뇌는 아비의 절절한 마음이 백지장 위에 녹아 있고
'소복을 한 백지장 위에' 쓰고 싶어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스며 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하면서도 호기심에 책을 주문하고
그 책이 배달되기 전 생을 다하여 책을 열지 못할까
배달되지 않은 책의 표지는 무슨 색일지 궁금해한다
2019년 쓴 글에는 학구적으로 접근한 산문들이 많고
뒤로 갈수록 생각과 쓰기를 힘에 부쳐하는 모습이 역력해진다
눈물 한 방울 흘리게 만드는
작가의 지난 시간,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깊다
'손으로 쓴 전화번호책
눈물 한 방울
어렴풋이 숫자 위에 떠오르는
아련한 얼굴'
오래된 책을 책장에서 꺼내
"나는 늙고 너는 낡고"
죽음의 시작을 앞에 둔 지식인이 그려주는 매일은 어떤 모습일까
내게 다가올 그날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공감하며 생각을 넓히고 정리해 보는 시간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