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친구에게 높임말 하는 중도 입국학생
물을 쭉쭉 흡수하는 스펀지 같았다.
중국에서 온 린이는 스펀지처럼 한국어를 바로바로 흡수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바로 이해하고 쓸 수 있었다. 참으로 신통방통했다.
이런 속도라면 금방 한국어를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린이는 내게 받는 한국어 수업 말고도 따로 과외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정말 기대가 높았다. ('린이'는 가명입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니 역시나 정체가 시작된다.
언어를 배우다 보면 항상 이런 시기가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성실히 계속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실력이 점프하면서 보다 더 잘하게 된다.
따라서 이 정체기를 잘 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선생님의 끊임없는 격려는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
여름 방학을 주제로 배우고 있을 때였다.
방학 때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린이는 대답을 못했다.
지난번에 워터파크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워터파크?'라고 물었는데,
'워터 파크... 가고 싶어요.' 하고 마지못해 대답한다.
'그거 말고 다른 거 뭐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어디 가고 싶다든지..' 하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다가
"중국에 가고 싶어요."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 한편이 아리다.
린이는 중국 학교에서 올 A를 받았던 학생이라고 들었다.
언제 가장 기분이 좋아요 물었을 때,
100점 맞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대답하는 아이다.
중도 입국 학생으로 한국에 오는 학생들은 자의로 한국에 온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의사 결정에 따라, 부모님을 따라오게 된다.
정착 초기에 적응할 때는 적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새가 없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는 향수병에 걸리거나,
뒤늦게 '왜 한국에 와서 이렇게 힘들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가'를 깨닫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슬럼프가 시작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신기한 것도 많고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금방 금방 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말이 조금 되고 알아듣기도 하면서 긴장이 풀리게 되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교사로서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그것은 바로 친구 관계이다.
한국어에는 높임말과 반말이 있다.
처음 한국어를 배울 때는 모두 '-아요/어요'의 '해요체'를 먼저 배운다.
온 지 얼마 안 되어 한국어가 서투른 이 학생들은
친구에게도 '-해요?' 라며 높임말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친해지기에 거리감이 있고,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다.
만약 같은 나라에서 온 중도 입국 학생들이 많다면 그들끼리만 어울릴 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린이를 소개하실 때는
교실에서 조용한 성격으로 말이 많지 않은 학생이라 하셨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목격한 린이의 모습은
동생과 중국어로 재잘재잘 떠들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수다쟁이 어린이였다.
돌아보니 미국에서 우리 아이도 그랬었다.
서울에 살 때 아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간 첫날, 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친구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아이가 그날,
회장에 출마하겠다고 손을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담임선생님이 참 용감하다고 말씀해 주셨었다.
그랬던 아이가 미국에 가서는 정말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아웃사이더가 되었었다.
아마 린이도 원래는 발랄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많이 떠는 학생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가 서툰 지금,
용기가 없어서 반 친구에게 같이 집에 가자고 말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담긴 일기를 보며,
나는 학생들을 만나면 자꾸 말을 시켜보게 된다.
오늘은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랑은 어땠는지 자꾸 물어본다.
말이 서툰 아이들은 표현을 빨리빨리 하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라도 조금 더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자신의 반 친구들과 한 마디라도 말을 더 할 수 있게 되어
친구도 만들고 정서적으로도 빨리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