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 러시아에서 온 4학년 초등학생이다. 작년에 한국에 와서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체조를 중점적으로 하는 기숙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매번 고개를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학생이며, 지금은 태권도 도장에 다니고 있는 씩씩한 학생이다.
작년에 내게서 한국어를 배울 때, 적극적인 자세로 열심히 했었다. 매일 일기도 쓰고,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한국어를 익혔었다. 욕심이 많아 열심히 배우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었다.
올해 다시 만난 진은 좀 더 어려워진 한국어와 국어 과목 수업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받아쓰기 시험을 잘 못 봤다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파워 E 성향의 학생이라 친화력이 좋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유창하지 않지만 한국어로 친구와 약속을 잡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는 등 잘 지내는 모습이었다. 잘하고자 하는 의욕도 높아 같이 나와 같이 받아 쓰기 연습 문제를 공부했고, 힘들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늘 진이 교실에 들어오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빨개진 눈동자가 누가 봐도 울었던 흔적이었다.
"진아, 울었어?"
"선생님, 저는 오늘 기분이 안 좋아요. 친구가 저한테 '바보'라고 했어요."
나는 울상인 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너무나 화가 나고 속상했다.
너무 속상해서 다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너는 러시아어로 '그렇게 말하지 말라'라고 유창하게 말하라 했다.
진은 담임 선생님께 이 일을 말했다고 했다.
아마 담임 선생님께서 그 학생을 불러 이야기하리라.
그보다 먼저 나는 한국어 수업을 하기 위해 진의 마음을 달래줘야 했다.
나는 진을 달래고 두둔하는 이야기를 한참 하면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수업을 시작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진은 신나는 수업을 할 수 없었다.
직접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는 이상 어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참 어려운 것이다.
진에게 그렇게 말한 그 학생은 아직 뭘 모르는 어린이라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학생은 초등학교 고학년에 속하는 4학년이다. 4학년이면 아마 다문화 혹은 다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 국가라 어릴 때부터 인종 차별에 관한 교육이 철저하다. 특히 학교에서는 차별에 관한 문제가 아주 아주 민감하다는 것을 알기에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각각의 학생들에 대해 공평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학생들이 사춘기나 어른이 되고, 자신의 가치관이 생기면서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 차별이나 편견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 아들도 중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 아들과 그 친구에게 차별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엄마인 나는 너무나 놀랐지만 아들은 덤덤하게 괜찮다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한다. 다행히 이 때는 그런 말을 들어도 흘려보내고 무시할 수 있는 몇 겹의 딱지가 생겼던 듯하다.
여하튼 미국은 샐러드 보울 속 야채 과일처럼 다양한 인종이 모인 국가이기에 더 강조해서 교육하는 것이 '다름 인정' 교육이다. 여러 인종이 모두 한 교실에 모여 수업을 받기에, 처음 교육이 시작할 때부터 가장 강조하는 주제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을 착실히 받은 학생들은 '다름'을 인정하고 모두와 잘 지낸다. 따라서 초등학교 교실에서 외국에서 온 학생을 놀리는 일이 생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교육은 변화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도 입국 청소년들의 학업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기도 하다. 한국어 교육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정서적 안정 문제도 만만치 않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생활하는 기본적인 생활도 쉽지 않은 가운데, 학업이 뒤처지는 문제까지 따라 나오니, 처음 한국에 온 아이들의 높았던 의욕은 점점 떨어진다.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기에는 이들에게 너무나 높은 벽들이 존재한다. 얼마 전 수강한 '한국 사회의 다문화 현상 이해' 과목에서도 중도 입국 청소년들의 한국 생활에 대해 심각한 시선으로 다루었다. 중도 입국 청소년들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의 아동보다도 더 힘들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동들은 생김새가 조금 다를 뿐 태어나면서 한국 사람처럼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반면, 중도 입국 학생들은 이미 떠나온 자기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나라인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해야 하고, 학업도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교사와 부모의 정서적 지원이 절실하다. 최소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는 철저하게 학생들에게 각인시켜 같이 무시와 차별이 아닌 다양성 인정과 조화를 우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중에 진으로부터 그 친구에게 사과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그 학생과 이야기하고 진에게 사과하도록 했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진의 마음이 완전히 풀린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진은 아직 한국어로 당당하게 주눅 들지 않고 말할 수 없다. 한국어를 네이티브처럼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뎌내야만 한다. 그 후 몇 번의 수업은 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기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