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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글 Jan 07. 2025

8. 효과를 본 한국어 수업 배분

처음에는 한국어 수업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어를 잘하게 되면 학교 생활이나 교우 관계 등이 모두 다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생활을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표준 한국어 의사소통 2권을 끝내고 나니 또 다른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다. 그것은 앞으로 수 년동안 학생들이 해결해야 할 학업 문제였다. 

이들은 4학년, 3학년이지만 실제 학교에서 수업받아야 할 수준은 유치원, 1학년 수준이었다. 아직 제 학년에서의 공부는 힘들었다. 특히 4학년 교과서에서는 어려운 어휘들이 많이 나와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도 입국 학생의 수준과 차이가 많이 났다. 이런 경우, 원체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학생들은 괜찮다. 현재의 수준을 인정하고 그냥 가르쳐주는 대로 공부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본 국에서 잘하던 학생이었다면 얘기는 다르다. 


미국에서 한글학교 교사로 일할 때였다. 철이(가명)는 한국계 이민자 가족 구성원이지만 한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지만 한글도 몰랐기에 한글 기초반에 들어가야 했다. 한글 기초반은 어린아이들도 많았고, 특히 한국인 부부로 구성된 가정의 어린이들은 철이보다 어리지만 한국어를 잘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자신보다 잘하고, 칭찬을 받는 것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나 보다. 한글학교에 오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했고, 수업에 들어와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하기 일쑤였다.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는 독보적으로 잘했고,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한글학교에서는 테스트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니 하기 싫었던 것 같다. 이런 배경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칭찬하고 용기를 주었을 텐데 초보 교사였던 나도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른 채 수업을 진행했었다. 매 번 자신의 초등학교에서 1등이나 우수한 성적을 받던 철이는 한글학교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고, 결국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다. 나중에서야 이를 알게 된 나는 어떤 학생이냐에 따라 가르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너무나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중도 입국 학생들도 모두 자신의 나라에서 잘하는 아이들이었고, 이 부분에서 자존심이 센 아이들이었다. 학생들은 실제로 가르치는 족족 흡수해 버리기도 했고, 어떨 때는 오늘 배울 부분을 추론해내기도 해서 정말 '가르치는 맛'이 났다. 특히 문법 수업 시간에는 하나를 제시하면 나머지 불규칙 동사들을 스스로 먼저 말하면서 변형시키기도 해서 정말 '가르치는 보람'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어' 수업 시간에는 신나게 공부했지만 정작 학교 교과 수업 시간에서의 그들은 얘기가 달랐다. 이들은 본국에서 잘했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에 수업 시간에 자신이 잘 못한다는 것에 너무 속상해했다. 특히 본국에서 잘했기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좌절감이 더 컸을 것이다. 미국에서 한글학교를 다니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므로 그만두고 싶다면 그만둘 수 있다. 하지만 한국으로 이주해 공교육기관을 다녀야 하는 중도 입국 학생들에게는 잘하든 못하든 좋든 싫든 학교를 그만두는 옵션은 없다. 따라서 적응은 필수이다. 자신이 잘하는 그룹에 속하지 않고 뒤떨어져있다는 것을 느끼더라도, 자존심이 상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그저 묵묵히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한국어 모국어를 하는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이다. 우리나라의 초등 교과서를 살펴보면 외국 학생이 한국어로 배우기에 어려운 한자어 어휘, 은유법 등이 포함된 이해가 쉽지 않은 지문들이 상당하다. 물론 초등학생이므로 아직 어리므로 한국어 모국어 학생을 몇 년 안에 따라잡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해도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했다. 다른 과목은 물론이고 국어 교과목도 그랬다. 띄어쓰기와 어려운 어휘가 포함된 4학년 문장 받아 쓰기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모를 단어들로 가득찬 문장들은 이해를 시키려니 시간이 모자라고, 그렇다고 무작정 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3학년까지는 그럭저럭 따라가는 듯했는데, 4학년이 되니 쉽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어도 한국어지만 학교 교과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학생들의 과제가 되었다. 


이때, 도움을 준 분은 학교 한국어 담당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받아쓰기나 독해 문제집과 같은 보조 교재 사용을 권했는데, 이 방법은 학생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좋은 해결책이 되었다. 가령 문해력 문제집이 1학년 용이라 하더라도  인물과 사건, 배경을 구분하는 문제들이 나온다. 이는 4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수업이기도 하다. 물론 4학년 교과서의 지문은 1학년 독해나 문해력 문제집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인 인물, 사건, 배경을 구분하고 파악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같다. 따라서 학생들은 아주 쉬운 지문으로 기초적인 국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국어 교과서와 독해 문제집을 연계해 수업하는 것은 조금이나마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수준별 개인 수업과 한국어 공통 수업의 구분이 가능했고, 더 세세하게 아이들에게 맞춤 교육을 제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이 비슷해 한국어 수업의 진도가 같아서 할 수 있었던 방법이다. 요일을 나누어 이틀은 함께 한국어를 배웠고, 나머지 3일은 개인 맞춤 수업으로 학교 교과 수업을 보충했다. 한국어와 교과 수업, 2가지 목적을 위해 수업을 나누어 진행했고, 개개인의 수준에 맞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효과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수업 시간에는 표준 한국어 의사소통을 함께 공부했고, 개인 한국어 수업 시간에는 독해 문제집과 받아쓰기 공부, 그리고 학생들이 원하는 교과 수업 보충 시간으로 활용했다. 교사로서 운 좋게도 잘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을 만나, 이끄는 대로 열심히 따라와 주었기에 학기가 끝난 후 지금, 많은 성장과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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