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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글 May 04. 2022

잊지못할 '인생 홈커밍데이 파티'

재미있는 미국 고등학교 에피소드



미국 고등학교에는 1년에 두개의 큰 행사가 있는데 가을 학기에 홈커밍데이가 있고, 봄학기에 하는 프롬이 있다. 그 가운데 가을에 하는 홈커밍데이는 모교 = 홈(Home)에 오는 날로 재학생들과 졸업생들, 즉  동문들이 같이 모여 학교 미식축구팀의 경기를 관람한다. 저녁때 이루어지는 파티에는 재학생들이 참여하는데, 아이들은 캐주얼 정장과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은 후  체육관에 모여 춤도 추고,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9,10학년이었던 2017년, 큰 아이는 이미 홈커밍 파티를 한 적이 있어서 일찌감치 친구들과 우리 집 지하 스크린 앞에 모여 영화를 보기로 했다. 하지만 둘째는 홈커밍파티가 처음이라 친구들과 학교 체육관에서 펼쳐지는 파티에 가기로 했다. 

나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러한  경험이 정말 그들의 인생 기억에 많이 남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양복 정장을 사고, 칵테일 드레스를 사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작 내가 파티에 참여해서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아이들에게 나중에 자세히 듣기로 하고, 둘째를 파티 장소인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Movie Night을 하겠다는 큰 아이를 위해서는 지하실에 팝콘과 음료수를 가득 채워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주었다. 


사춘기의 틴에이저들이라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아주 중요했다. 중학교때 미국에 온 나의 아이들은 영어가 원어민처럼 능숙하지 않아서 중학교 때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했다. 생각해보라. 그들만의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이방인 친구의 밍기적 거리는 말을 어떤 사춘기 청소년 친구가 기다려주겠는가. 실제로 둘째는 정통 영어도 영어지만 또래 아이들이 쓰는 슬랭을 배우기 위해 유투브 비디오를 찾아보곤 했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소극적인 성격이 되었고, 과묵하거나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로 오인되면서 친구를 사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 간지 2-3년 정도 지난 8학년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영어로 수다를 떨었다.

이런 과정들을 본 나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같이 논다, 같이 어디를 간다 는 이야기에 적극 찬성하고, 기뻐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한 고등학생이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만큼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없으리라.   




큰 애는 지하에서 친구 몇 명과 한창 영화를 보는 중이었고, 둘째는 학교 체육관에서 파티를 하고 있을  저녁 8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갑자기 둘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오면 안되겠냐는 거였다. 나는 큰 애가 친구들과 지하에 있었기에 오빠에게 먼저 괜찮냐고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둘째는 오빠에게 양해를 구했고,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다. 왜 집에 오려 하냐고 했더니 누군가 체육관의 비상벨을 눌러 소방차가 와서 전체 시설 점검을 하고 난리가 아니란다. 처음에는 빨리 정리가 될 것 같아 기다리려고 했는데, 몇 십분이 지나도 시설 점검은 끝나지 않았고, 그 사이 파티의 흥은  다 깨져 버렸고, 다들 집에 가기는 싫고 하니 어딘가 새로운 파티 장소를 찾아야 했던 것이었다. 나는 어차피 지하에서 큰 애가 친구들이랑 놀던 중이었기에 뭐 몇 명 더 오는 것은 괜찮으려니 생각하고 둘째를 데리러 학교 체육관 앞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 도착해 딸 아이를 태우고, 친구들을 태웠다. 그 당시 나의 차는 SUV로 7인승이었다. 그런데 차를 타는 모습을 보아하니 뒷 트렁크로 문을 열고 타는 아이도 있고, 끝도 없이 아이들이 차 속으로 들어왔다.  운전석에 앉아 보는데, 아이들이 눌렸는지 신음 소리도 나고 백미러에 아이들 얼굴이 가득했다. 집으로 가는 길, 차로 5분 거리의 길에는 3개의 과속 방지 턱이 있는데, 그 때마다 괴성과 신음이 섞인 소리가 들렸다. 이거 괜찮을 지 너무 걱정이었지만 일단 빨리 도착해 아이들을 차에서 내리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스피드도 나지 않았다. 집 주차장에 도착하자, 숨을 참았던 아이들이 하나씩 차에서 내렸다.  뒷 트렁크 문을 열자 포개져 있던 아이들이 굴러떨어졌다. 헐, 모두 11-12명 정도 탔나보다. 에고고. 차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모두 지하 스크린앞으로 달려갔다. 영화를 보고 있던 큰 애 친구들과 합쳐 거의 20명의 아이들이 모여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 둘째의 친구들이 도착해 앉았던 바로 그 순간, 그 영화에 딱 한 번 나오는 키스씬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떼창 리액션이 큰 소리로 흘러나왔다. 십수명 아이들이 그 네모난 차에서 막 탈출해 나간 것도 기가 막힌데, 절묘하게 바로 영화 속에서 키스신을 맞닥뜨린 고등학생들의 반응이라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본 아이들은 유튜브로 노래방을 틀어 노래를 불렀다. 그 날 처음, 나는 중국인 아이들이 중국어 노래를 떼창으로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재미난 경험이었다. 9시 반부터는 한 명씩 한 명씩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을 픽업하러 온 부모들과 인사도 했다. 알고 보니 어떤 아이는 우리 집 앞 집에 사는 아이였다. 

나중에 들어 보니 어떤 아이는 우리 둘째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아마도 둘째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 정도쯤 되었는 지 어쩌다가 나의 차에 타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뻑적지근한 홈커밍데이 파티를 치르고, 그 후로 둘째는 친한 친구들이 많이 생겨 그 친구들과 고등학교 생활을 정말 재미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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