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사서 Apr 04. 2018

따뜻한 판사님

천종호,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청소년들의 엇나감은 누구의 잘못일까? 읽으면서 가슴 먹먹해지는 사례들이 많았던 책. 

저자 천종호 판사님은 TV에서도 많이 나오시고 인지도가 꽤 높으신 분이다. 소년법정에서 조금 독특한(?) 재판을 진행하시기로 유명하신데, 아이들에게 부모님을 향해 "잘못했습니다!" "사랑합니다!"같은 말을 외치게 한다든지, 애정어린 호통으로 훈계를 하기도 하신다. 때로는 유행가의 가사를 개사해서 읊게 하기도 한다. 

이 분이 만났던 다양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는데, 그만큼 다양한 사건들을 만나면서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사회에 방치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각양각색으로 모든 힘을 다해 애쓰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벌을 주더라도 아이들 각자의 환경, 성격 등 모든 것을 고려해서 아이에게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한다. 아이들이 아무리 중죄를 지었더라도 소년원에 가서 더 나빠질 것 같으면 다른 조치를 내리고, 사회적 관계가 필요한 친구들은 재활센터로 보내기도 한다. 또 소년재판의 특성상 아이들의 죄를 묻고 벌을 내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재판 이후에도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연락을 놓지 않으려고 하신다.

아이들의 비행은 주로 결손 가정, 학교의 무관심한 선생님 등 관심이 부족한 곳에서 주로 생겨난다. 부모님에게 버림받고 비행을 저질러 센터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있더라도, 결국 기대고 싶은 곳은 부모님인지라 어찌어찌 알게 된 엄마의 번호로 전화했는데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며 끊어버리는 그 상황을, 그 다음날 엄마에게 다시 전화했는데 전화너머로 결번이라는 메시지가 들릴 때 그 상황을.. 그 작은 아이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세상이라는 곳이 미워질 때, 든든한 아빠처럼 호통으로 잔소리해주는 판사님이 있어 아이들이 그나마 삶 속에서 희망을 얻는다.

소년재판부는 법원 내에서도 가장 소외된 곳이라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열심을 다하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며 읽었다. 소외된 아이들의 마지노선 격으로 보호막같은 존재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소년들의 인생에 빛만 가득하길!


(덧. 책을 읽다 보면 청소년재활센터들이 종종 나온다. 아이들이 소년원으로 가지 않고 대안가정과 같이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을 거친 아이들이 센터장님 내외분들의 사랑을 받고 바르게 밝게 자란 모습들을 보면서, 그러나 지원은 열악한 이 곳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들도 함께 동참하게 된다면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잃어버렸던 따뜻한 가족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이트는 이 아래!)

http://www.mansaboy.com/



* 남겨두기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태를 수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역시 교육이다." 135 p.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들이 절망감과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하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 거창한 도움을 주지는 않더라도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 138 p.

"학교와 교사는 두 아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대신 일상화된 차별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하다지만 최소한 학교에서만큼은 그런 태도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밉든 곱든 모두 교사가 품어주어야 하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181 p.

"비행을 저지른 소년 역시 아지 소년이기에 얼마든지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소년범죄는 충분한 보호와 감독, 적절한 교육을 통하면 치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청소년 스스로의 노력과 더불어 사회적 차원에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 소년들의 인생에 서둘러 마침표를 찍기 전에 그들이 발 딛고 선 벼랑 끝, 그 가파른 현실에 먼저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어른이고, 그래야 어른 대접도 받을 것이 아닌가." 195 p.

"사람들은 누구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잘못이 있을 때 '미안합니다' 또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억지로라도 하게 되면 관계와 소통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또 스스로 그런 말을 반복하다 보면 남의 탓을 하는 대신 자기 성찰을 하게 되므로 그 지혜를 벗 삼아 인생행로에서 만나게 될 지도 모를 광풍을 무사히 넘길 수도 있다." - 205 p.

"사랑과 절대적인 믿음은 때로 사막을 숲으로 만들기도 하고 폐허 위에서도 생명을 자라게 한다." - 235 p.

철수는 식사 중에도 계속해서 소년원 보내지 않고 하라쉼터에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더니,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느닷없이 내게 말했다.
"판사님, 앞으로 절대로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 281 p.

판사실로 올라온 아이들은 발랄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들이 만든 김장 김치인데 판사님께 드리려고 왔어요. 판사님께 불러드리려고 노래도 준비해 왔어요."
순간 당황하여 "다른 판사님들 일하시는데 방해가 되니 노래는 나중에 해줘."라며 겨우 진정시킨 뒤 아이들이 들고 온 종이가방 속을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김치 세 포기가 정성스럽게 담긴 플라스틱 통이 하나 들어있었다. 가슴이 뭉클하여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 289 p.

"그러나 사실 명철이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는 불만 외에는 센터에서 생활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엄마의 정이 사무쳤던 탓인지 어느 날은 센터장 부부가 자고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가 센터장의 발을 베고 자기도 했다. 그 바람에 잠에서 깬 센터장이 자신의 발목에 침을 잔뜩 흘리고 자는 명철이가 가여워 '이리 온나, 안아줄게, 선생님 팔 베고 자라.' 하면 쑥스럽게 웃으며 도망을 가기도 하고, 센터장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관심이라도 보여주면 부끄러워하면서 얼른 도망을 치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일찌감치 잠이 든 사이에 슬며시 들어와 잠이 들 정도로 명철이는 센터장 부부를 따랐다. 명철이는 그 후 안정을 찾고 누구보다도 착실하게 센터 생활을 하였다." 313 p.

                                                  

매거진의 이전글 제안의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