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사서 Jan 29. 2018

제안의 시대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자본론』


                                                                                                                                                                            

당인리책발전소에서 남편이 책을 훑어보더니, 사서인 내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며 추천해주고 돈도 내 준 책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내가 절대 사지 않을 책이다. 아무래도 제목에 '론(論)'자가 들어가면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전공책같은 느낌이 든다. 또 옆에 부제를 보니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있다. 디자이너라니? 나는 디자인에는 1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 이 책은 나랑은 전혀 관계가 없는 책일 뻔했는데, '사서'가 읽으면 좋을 책이라니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최근에는 코엑스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 덕분에 많이 알려졌을 것 같다. 다케오 시립도서관. 이 도서관을 기획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코엑스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은 바로 이 도서관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졌다. 코엑스는 별마당 도서관을 오픈한 이후 30%의 매출 상승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덕분에 도서관계는 조금 바빠진 것 같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성공과 별마당 도서관의 인기는 도서관계에서도 관심을 두고 분석하려는 대상이 되고 있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벤치마킹한 별마당 도서관이 핫해진 이유는 큰 쇼핑몰 안에 책을 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과, 도서관 안에 카페 등 음식물을 먹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것 등이 있을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스타그램에서 별마당도서관으로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줄줄이 나오는, 입구에서부터 시선을 잡아 상징화된 높은 서가도 한몫할 것이다. 보통 우리나라 일반 도서관에는 -요즘에는 많이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이긴 하나- 이용자가 음식물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시끄럽게 대화를 할 수 없다. 당장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에서도 이 두 가지 행동은 금지된다. 그런데 이 곳은 그런 제약이 없이 이용자 친화적인 장소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큰 틀이 저자의 아이디어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제는 공급자 위주의 판매에서 벗어나, 수요자에게 필요할 것 같은 상품을 '제안'하는 쪽으로 먼저 다가가야 되는 시대라는 점이다. 상품을 판매하는 쪽이 일방적으로 가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필요를 예측해서 우리에게 이런 제품이 있다고 말 그대로 제안을 하는 것이다. 이 생각은 내가 일하면서 많이 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라 너무 공감이 갔고, 업무 기획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개인에게 의미를 가지려면, 정보를 이용하려는 사람의 정보욕구가 있어야 한다. 이제는 정보욕구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이용자들이 필요로 할 정보를 잘 조직하고 분류하고 다듬고 체계를 만들어 욕구에 앞서 "이런 정보도 있어요!" 하고 제안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 정보를 다루고 '편집'해야 하니, 정보의 전문가,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할 것 같다.(그런데 이것이 가장 중요한 차별성 같은데 별마당 도서관에서 이런 것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분류에 체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읽으면서 너무나도 개혁적이라 이걸 어떻게 유혈사태(?) 없이 적용했을까 싶기도 했다. 도서관 사서들을 '접객 담당자'라는 명칭으로 변경해서 불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들고일어났을 것 같다.. 당장 나도 반대다.. 이런 개혁의 비하인드스토리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직원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무튼.. 내 직업 얘기가 나와서 너무 글이 길어졌지만.. 결론은 도서관도 이제 큐레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각각의 도서관 특성에 맞게 선제적 제안을 해주는 데까지 이르러야 또 성장하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 남겨두기


"히와타시 시장은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시장실 책상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들이 존재하는 장소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이른바 머리가 아니라 발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고객 가치'와 '시민 가치'가 등가로 맺어진 접점에서 다케오 시와 CCC는 연결되었고 CCC를 지정 관리자로 삼는 다케오 시립 도서관이 탄생했다." - 14 p.


"사실은 '편하다'라는 단순한 감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사회에서 물리적인 장소에 사람을 모으려면 인터넷상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식적으로 도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람이나 빛,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편안함'이지요.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찾은 방문객 중 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 29 p.


"플랫폼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히 '선택하는 장소'일뿐, 플랫폼에서 실제로 선택을 수행하는 사람은 고객이다. 그렇다면, 플랫폼 다음으로 고객이 인정해줄 만한 것은 '선택하는 기술'이 아닐까. 각각의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주는 사람. 그것이 서드 스테이지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객 가치를 낳을 수 있으며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해 주는 자원이다." - 49 p.


"이전까지 나름대로 매장을 경험해 온 경력자일수록 '굳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회의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어 이노베이션을 이루지 못하는 한, 영업 실태의 미래는 없다." - 72 p.


"여행 구역이라면 '예술적 측면에서 마법의 도시 프라하를 안내하자.'라는 식으로 고객의 가슴을 파고들 수 있는 제안을 몇 가지 정도 생각해 내고 그 주제에 맞는 서적이나 잡지를 진열해야 한다. 이것은 고도의 편집 작업이다. 서점 직원은 말이 아니라 매장의 진열대를 특수한 방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자신이 제안하고 싶은 내용을 표현해야 한다." - 74 p.                                    

매거진의 이전글 의사의 그림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